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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시티 만든다더니…서울시 도시재생 재검토해야"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도심재생 강조하고 재개발 숨겨"
박 시장 재검토 언급 불구 "철거에 오히려 속도 붙어"
2019-01-17 18:00:13 2019-01-17 22:52:10
[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지역산업 인프라 없이 창의산업 육성과 메이커시티라는 구호는 무의미하다."
 
서울시의 도심 재개발에 대해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에서 터를 잡고 활동 중인 청년 예술가와 메이커들이 지역 상인들과 공동 투쟁에 나섰다. 서울시는 일방적인 대규모 개발이 아닌 지역 생태계를 보존하는 재생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청년들을 청계천 인근으로 끌어들였지만 실제로는 수십년 간 지역에서 생계를 유지해온 주변 상인들을 내모는 재개발이 반복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7일 서울 중구청 앞에서 열린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반대 총궐기 대회에서 청계천 인근 스타트업 전용공간 '세운 메이커스큐브'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전유진 씨는 "서울시의 산업·문화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방향성이 그 동안의 활동과 일치하는 점이 있어 2017년 입주했다. 이후 개인 작업뿐만 아니라 지역문화와 예술 간 융합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워크샵과 협업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왔다"며 "하지만 서울시는 청년 사업가들을 앞세워 도시재생사업을 홍보하면서도 이 일대를 철거하고 재개발한다는 사실은 숨겼다. 제작기술문화 입문자에게 인터넷이 줄 수 없는 실질적인 전문지식을 배울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공간을 대책 없이 없애겠다는 서울시 방침은 지역문화 생태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7일 서울 중구청 앞에서 열린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반대 총궐기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강명연 기자
 
청계 3-2구역에서 15년째 신아주물을 운영 중인 김한울 사장 역시 "신아주물은 본래 3대째 이어지는 곳이었는데 제가 전통을 이어가겠다고 하니 이전 사장님이 프리미엄을 붙여주겠다는 다른 업자를 뿌리치고 조건 없이 가게를 넘겼다"며 "청계천 일대는 떠나가는 사람도 전통이 이어지길 바라는 곳임에도 서울시가 전통산업의 메카를 없애려고 한다. 실제로 탱크 모형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을 만큼 여러 가게가 연결돼 지역 생태계가 유지돼왔는데 일부 가게가 폐업하면서 이미 일부는 망가졌다"고 말했다. 42일째 청계천 인근에서 천막농성 중인 강문원 청계천 소상공인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입주상인을 내쫓는 청계천 재개발은 애환이 깃든 피맛골을 없앤 오세훈 전 시장 방식과 다를 바 없다"며 "박원순 시장이 농성장에 방문해 현장 목소리를 듣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는 오세훈 전 시장 시절인 2009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이후 2014년 박 시장 들어 대규모 개발이 아닌 소규모 경쟁개발을 목표로 기존에 8개로 나눠져 있던 대형 블록을 170여개로 나눴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가 도심 재개발을 통한 주택공급 확대 방침을 밝히고 주변 상업지구 주거비율을 60%에서 90%로 늘리면서부터 사업에 속도가 붙으며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게 됐다. 서울시와 중구청은 시행사가 이주대책을 마련했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재개발에 반발하는 상인들에게 수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일방적으로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재개발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박 시장이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전면 재검토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상인들은 공수표일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하고 있다. 박 시장은 "역사적인 부분을 잘 살려서 개발계획 안에 반영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하는 방안을 요청하겠다"고 말했지만 대규모 집회가 예고된 이날도 남아있는 건물을 새로 철거하는 작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김상윤 비대위 팀장은 "세운 3-1, 4, 5, 7구역은 중구청이 관리처분 인가를 냈지만 철거는 일부만 진행됐다. 박 시장이 전면 재검토를 언급했으니 남은 건물은 일단 보존해야 함에도 서둘러 펜스를 치고 공사에 나서고 있다. 철거를 오히려 서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민 정의당 서울시당위원장은 "지난 선거에서 박 시장과 소규모 도심재생 방식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여전히 개발 이슈가 자꾸 등장하고 있다. 그나마 박 시장이 전면 재검토를 언급했지만 사업시행 인가 이후 돌이키기 어려운게 현실"이라며 "설계 변경으로 그칠 게 아니라 역사와 문화, 소상공인을 살리는 방향으로 재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역시 "도시는 소유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서울시가 여전히 사용자 중심의 개발에만 몰두해 있다"며 "개발 관련 정보공개를 의무화하고, 도시계획위원회에 주민이 참여해 의사가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계천 인근 공구거리에 재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강명연 기자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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