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서울의 페르 라셰즈가 필요한 이유
입력 : 2019-02-12 06:00:00 수정 : 2019-02-12 06:00:00
영화 음악의 거장 미셸 르그랑(Michel Legrand)은 ‘내 마음의 풍차(les moulins de mon coeur)’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가사 내용부터 인상적이다. “흐르는 시냇물에 던진 돌멩이 뒤로 동그라미들이 수를 놓네. 총총한 항성의 말들이 뛰는 달님 속 회전목마처럼, 토성환처럼, 카니발의 고무풍선처럼…너는 네 이름으로 내 맘속 온갖 풍차를 돌리네…사계절 바람에 너는 네 이름으로 내 맘속 온갖 풍차를 돌리네.”
 
르그랑이 지난달 말 86세로 세상을 떠나자 그를 사랑한 많은 이들이 애도했다. 한국인들은 아마도 ‘내 마음의 풍차’보다 ‘쉘브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의 주제가로 그를 더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42년의 여름>이나 화제의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르그랑은 세 차례에 걸쳐 오스카상을 거머쥐었고 그래미상과 에미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며 1960~80년대를 풍미했다.
 
그런 르그랑의 종착지는 파리 20구 페르 라셰즈(Pere Lachaise) 공동묘지였다. 르그랑이 여기에 묻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가 1970년대 작곡한 영화음악 <당나귀 공주>가 지금도 이곳에서 연주되고 있다. 이곳은 예술의 거장들이 묻히는 성지이기도 하다. 르그랑은 지난 2월1일 이곳에 잠들었다.
 
페르 라셰즈는 필자의 파리 유학시절 아지트 중 한 곳이었다. 바람이 그리운 날, 언덕이 그리운 날, 아버지가 그리운 날, 뮈세(Alfred de Musset)가 그리운 날은 어김없이 이곳에 갔다. 산이 없는 파리에서 높은 곳에 올라 한줄기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곳에는 걸출한 예술인들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몰리에르, 장 드 라 퐁텐, 오노레 드 발작, 알프레드 드 뮈세, 조르주 상드, 마르셀 프루스트, 기욤 아폴리네르, 오스카 와일드, 프레드릭 쇼팽, 조르주 비제, 시몬느 시뇨레, 이브 몽땅,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학인·예술인이 잠들어 있다.
 
쇼팽이나 비제처럼 음악가를 꿈꾸는 사람들, 발작이나 프루스트처럼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가 추모하고 영감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한 바퀴 돌면 죽음은 결코 암울하거나 끝이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페르 라셰즈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쇼팽은 마치 어제 우리 곁을 떠난 것 마냥 추모열기가 뜨겁다. 추모객들이 바친 수십 송이의 장미꽃과 활활 타오르는 예쁜 양초들이 무덤을 둘러싸고 있다. 쇼팽이 170여 년 전에 죽었다면 누가 믿을까. 오스카 와일드는 어떠한가. 추모객들은 와일드만큼이나 야성적이고 열정적이다. 돌비석 위를 무수히 수놓고 있는 빨간 립스틱의 키스자국들은 정말 멋지고 기막힌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을 부른 비련의 여인 에디트 피아프는 어떠한가. 그녀의 무덤 앞에도 생화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한국의 문학가·예술가들은 죽으면 어디에 묻히는가. 우리는 문화적 유산을 만드는데 너무도 인색하다.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우리의 정서를 일깨워준 소설가들, 시인들, 배우들은 어디에 잠들어있는가. 우리의 애환을 노래한 가수들은 또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 대한 대접을 너무도 소홀히 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우리와 달리 무엇이든지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에펠탑 근처에 있는 께 브랑리(Quai Branly) 박물관에 가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 등지의 지인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선물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아주 멋진 현대식 박물관이지만 들어가 물건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면 우리가 흔히 중고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한 것도 많다. 그러나 박물관을 지어 그것들을 기발한 조명 아래 전시하고, 역사화 한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란 성경구절처럼, 아니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처럼 역사는 쓰기 시작하는 자들의 것이다. 우리도 지금 당장 시작해 보자. 한국인들이 좀 더 문학적 소양을 키우고, 예술적인 감각을 익히려면 예술인들의 영혼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인들의 성지가 서울 어딘가에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진정 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경제대국에서 문화대국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음미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의 우수한 작가들과 예술인들. 그들은 어디에 영면해 있는가. 인터넷으로 찾아보지 않는 한 쉽게 알 길이 없다. 한국 예술인들의 넋이 살아 숨 쉬고 문화계승이 대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가 앞장서 예술인의 성지를 만들라. 역사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나라는 풍성해지고, 윤택하며, 창대할 것이다. 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을 제대로 대접하고, 그들의 혼을 소중히 기리는 문화 창달이야말로 르그랑과 같은 음악인, 아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탄생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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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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