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석의 재계시각)포용국가 일자리 정책 해법, 석포제련소에 답있다
‘직장이 삶’ 평생직장 실현…‘생애주기적 일자리’ 대표 사례
입력 : 2019-02-21 11:28:57 수정 : 2019-02-21 11:28:57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영풍 석포제련소에는 60대 정년 연령을 넘겨서도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제련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정준원(68)씨도 그중 한명이다. 정 씨는 1970년대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영풍에 입사한 석표제련소의 ‘살아있는 역사’다. 과거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은 태백시까지 꼬박 1시간 넘게 걸어야 초등학교를 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나 제련소가 생기고 소위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그 자녀들도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가 생겼다. 정 씨는 이곳에서 슬하의 두 남매를 길러 대학까지 보냈다. 석포제련소를 퇴직한 후에는 협력업체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주조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 씨 말고도 제련소와 인생을 같이 한 제련 전문가들은 꽤 많이 있다.
 
영풍 석포제련소 주조공장에서 직원들이 주조기에 담겨 고체로 굳어지고 있는 액체 상태의 아연의 표면을 철판으로 반질하게 다듬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문재인 정부가 ‘혁신적 포용국가’를 표방한 이래 포용을 가능하게 할 가장 대표적인 방법론 중 하나로 일자리가 손꼽히고 있다. 일자리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가 광주형 일자리다. 일자리 수를 늘리되 봉급은 현실화해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많이 제고하자는 것이다. 초봉 3500만원에 주 44시간 근무가 광주형 일자리의 기본 세팅이다.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이라는 4대 근로원칙도 담겼다.
 
그런데 광주형 일자리가 꿈꾸는 노동 모델을 이미 실현한 곳이 석포제련소다. 영풍은 노사관계가 매우 유연한 편에 속하는 기업이다. 지역민들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그들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자들도 상당히 높은 자아 정체감을 갖고 있다. 앞서 정 씨 사례처럼 ‘생애주기적 일자리’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젊어서는 핵심 요소기술을 배우고, 숙련공이 되어서는 현장을 지휘한다. 퇴직연령이 되어도 공장에서 습득한 암묵지를 사장시키지 않고 협력업체 소속자로서 공장 근로자들에게 이를 전수하는 데 참여한다. 협력업체 직원이라도 엄연한 선배이기에 존중하는 문화가 깊게 배어 있다.
 
석포제련소 노동자들은 최근 낙동강 상류 오염 논란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지난 2014년부터 석포제련소는 안동댐 오염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인접 토양이나 산림의 오염에 대해서도 계속 책임을 추궁 당했다. 50년간 공장이 존재하면서 예상된 수순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지역민들의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외부충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 극렬해지고 있는 환경운동은 영풍 소속 근로자들에게는 매우 큰 어려움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영풍 노동조합은 지난해 가을 거의 1~2주에 가깝게 계속되며 극렬해지는 환경단체의 석포 현장 시위대를 대상으로 ‘평화 시위 캠페인’을 전개했다. 사회관계망(SNS)상에서도 노조가 직접 제련소에 대한 오해를 해소해 나가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생애 전반에 걸쳐 일할 수 있는 공장으로서의 가능성과 마을의 물적 기반으로서의 가능성이 함께 유지되고 있는 곳이 바로 영풍 석포제련소다. 정부가 계속해서 고민하는 노동시장의 파랑새 찾기도 석포제련소에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면이 있지 않을까. 미실현 이익인 광주형 일자리의 가능성만 생각할 게 아니라 석포제련소같이 잘 운영되고 있는 일자리 기반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생산적인 고민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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