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SPC 형제 마약사건' 보도 그 후
입력 : 2019-04-24 06:00:00 수정 : 2019-04-24 06:00:00
"처벌을 안 받은 것도 아니고, 굳이 16년 전 일을 끄집어 내서 뭐합니까?"
 
'SPC 형제 마약사건' 취재 사실을 전해들은 SPC 측 고위 간부가 이렇게 말했다. 보도를 위한 마지막 단계로, 반론과 설명을 듣기 위한 만남에서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공소시효도 한참 지난 범죄를, 하필 가뜩이나 재력가 자녀들 마약 사건으로 어수선한 이때 보도하는 것이 적절한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SPC 측 고위 간부들이 본사로 두번이나 방문해 강력히 반론을 펴자 편집국 내에서도 신중론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SPC 측과 척을 지고 있는 누군가의 '악의적 제보'를 보도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 판결문을 단서로 역추적한 것이기 때문에 악의적 제보 따위는 문제되지 않았다. 또 다른 시각에서는 이미 형이 확정된 'SPC 형제'들의 묵은 과거를 들춰 내 광고나 얻으려는 의도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왔다.
 
취재기자와 담당 데스크·편집국장까지 격론을 벌인 끝에 결국 보도를 결정했다. 늘 그렇듯, 진실과 국민의 알 권리가 기준이 됐다. 대신 억울한 이가 생기지 않도록 다시 한번 팩트를 체크 했다. 꽉꽉 다 짠 치약을 또 한번 짜 내는 과정이었다.
 
그동안 'SPC 형제' 마약 사건은 동생 허희수 전 부사장의 범행으로만 알려졌다. 그는 미화 3700달러 상당의 대마를 밀수입해 이 중 일부를 흡연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검찰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초범이라는 점이 감형사유로 작용했다. 이 판결은 허 전 부사장과 검찰 모두 항소를 포기해 그대로 확정됐다.
 
여기에 두가지 문제가 있다. 취재를 통해 확인한 사실로만 보면, 허 전 부사장이 마약을 처음 접한 것은 2003년 10월로 추정된다. 당시 25세였던 그에게 마약을 쥐어 준 사람은 한 살 위 친형인 허진수 현 SPC 부사장이었다. 허 부사장은 그때 서울 이태원 한 호프집에서, 한 외국인으로부터 해쉬쉬 11g을 얻어 이 중 절반인 5.5g을 한남동 집에서 허 전 부사장에게 줬다. 
 
마약류관리법상 대마 소지는 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허 전 부사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지난해 허 전 부사장을 재판에 넘긴 당시 부장검사는, 그가 2003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소유예란 죄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는 것을 말 그대로 미루는 것이다. 전력이 없다는 것과 불과 25세라는 사실 등이 참작됐을 것이다.
 
SPC 측 주장대로 기소유예는 죄가 아니라고 치자. 그러나 당시 검찰이 허 전 부사장에 대한 처분을 보다 엄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15년 뒤 마약을 밀수입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형벌의 예방적 효과다. 형벌을 받았음에도 똑같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상습성을 매우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허 전 부사장은 형을 제치고 SPC 부사장까지 맡았다가 이 사건으로 밀려났다.
 
또 한 가지 문제로, 허 부사장은 2003년 총 7회에 걸쳐 대마를 흡연했다. 5번은 한남동 자택에서 혼자, 2번은 코엑스 주차장에서 지인과 함께였다. 허 부사장은 대마흡연 혐의로 기소돼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역시 본인도 검찰도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그런데 이 형벌은 허 사장의 단독범행에 대한 것이었다. 지인과 함께 저지른 2번의 대마흡연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남양유업 외손녀 황하나씨와 허 전 부사장은 입건 된 뒤 기소를 피했지만, 허 부사장은 기소되고도 2개의 범죄사실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대마흡연 등 마약투약 사건은 건별 기소가 원칙이다. 공범과 함께 했다면 병합해야 한다. 16년 전 허 부사장을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와 공판을 진행한 검사를 어렵게 찾아 이유를 물었으나 "너무 오래 돼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민적 공분을 부른 황씨 사건은 새로운 얘기가 전혀 아니다. 16년 전에도 이미 있었음이 이번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그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갔다면 허씨 형제는, 황씨는, 그리고 검찰과 경찰은 오늘과 같은 일로 곤혹스런 일을 당했을까. 
 
우여곡절 끝에 <뉴스토마토> 법조팀이 보도한 'SPC 형제 마약사건'이 최소한 16년 후 또 다른 허씨 형제들이나 황하나씨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로 남기를 바라본다.
 
최기철 사회부장(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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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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