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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영화 기생충, 우리의 시대극
2019-06-04 06:00:00 2019-06-04 06:00:00
"봉준호!" 지난달 25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ales Inarritu) 심사위원장이 2019년 칸 영화제의 팔므도르(Palme d'Or. 황금종려상) 주인공을 호명했다. 칸 영화제가 열리는 내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팔므도르를 수상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는 현실이 됐다. 이 소식은 영화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기쁨을 안겨줬다. 무더위 속 한줄기 소나기와 같은 쾌거였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과 정치권의 극한대결, 경기침체, 최악의 실업률 등 무엇 하나 속 시원한 게 없는 한국 사회에 프랑스 칸에서 날아온 소식은 단비와도 같았다.
 
칸 영화제 역사상 한국 감독이 팔므도르를 거머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이 상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만이 다섯 번을 수상했다. 그러나 올해는 한국이 당당히 칸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 반열에 오른 순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해 감사드린다. 나는 세계적인 감독으로 우뚝 선 '봉준호'라는 이름이 자랑스럽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고 언론들은 "봉 감독이 결국 한국인들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줬다"는 찬사를 보냈다.
 
이 대목에서 드는 궁금증 한 가지. 팔므도르란 대체 무엇인가. 불어로 팔므(Palme)는 종려나무, 오르(Or)는 황금을 뜻한다. 따라서 팔므도르는 황금종려를 가리킨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은 매년 최고의 영화감독을 뽑아 황금종려 잎사귀 모양의 트로피를 수여한다. 이 역사는 반세기 이전에 시작됐다. 1950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는 가장 우수한 감독에게 상장과 트로피를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팔므도르라는 상은 없었다. 1954년 칸 영화제의 대표가 된 로베르 파브르 르 브레(Robert Favre Le Bret)는 승리의 상징으로 칸의 거리에 있는 종려나무와 선조들이 사용한 무기의 문장에서 착상을 얻어 종려나무 잎사귀 문양을 제안했다. 이를 보석상인 루시엔 라종(Lucienne Lazon)이 제작해 1955년 팔므도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초의 팔므도르 수상자는 영화 마티(Marty)의 감독인 미국인 델버트 만(Delbert Mann)이었다. 그러나 칸 영화제는 한동안 그랑프리란 이름을 다시 사용했다. 결국 1975년이 되어 팔므도르는 재평가를 받았고, 그 명칭은 5년 후인 1980년이 돼서야 공식화됐다.
 
올해 봉준호 감독이 받은 종려나무 잎사귀는 길이 13.5센티미터, 넓이 9센티미터로 118그램의 금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 가격은 약 2만유로(한화 약 2656만원)다. 이 잎은 18캐럿 골드바를 주형에 넣어 760도에 녹여 본을 뜬 후 끌로 조각을 새기고 다듬은 것이다. 이 트로피가 완성되는 데는 약 40시간 이상이 걸리며 칸에서 수여하기 직전까지 보석상에 보관한다. 사고가 나거나 공동 수상자가 나올 것을 대비해 항상 여분의 팔므도르 하나를 더 준비해 두는 것이 관례다.
 
프랑스 언론은 2019 팔므도르의 주인공인 봉준호를 "한국의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대감독, 잔혹한 역사의 이야기꾼, 미국을 흉내 낸 한국의 물질사회와 극단적 자유주의를 예리하게 꿰뚫고 풍자한 관찰자"라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수상작인 '기생충'은 사회적 불평등을 훌륭한 솜씨로 스릴 넘치게 풍자했고, 기생충에 나오는 현대적인 멋진 집은 가난한 사람들이 지하에 처박힌 쥐처럼 사는 나라를 은유한 것이다.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그들은 분노를 터트린다. 2018년 팔므도르인 일본 감독 히로카즈 코레에다(是枝裕和)의 만비끼가족(万引き家族·도둑가족)은 이미 한 집에 사는 기생충 가족을 이야기했다. 봉준호의 재인식은 여기에 쐐기를 막았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칸 영화제는 최근 우리 사회에 퍼져가는 불평등 문제를 파헤친 작품에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듯하다. 봉 감독이 팔므도르를 수상한 것은 영화의 기술적인 면도 훌륭했겠지만 주제 또한 한 몫을 했다.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서 팔므도르를 수상한 봉 감독에게 우리는 찬사를 보내고 박수를 쳐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결코 안 된다. 축제 분위기에 빠져 영화가 다루고 있는 무거운 주제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기생충은 사회적 양극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우리 사회에 분명 커다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의 내용을 진지하게 음미해야 한다. 기생충의 주인공들은 결코 제3세계의 국민들이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황금종려상이라 역시 대단하다고 칭찬하거나 혹은 별거 없다고 실망하기보다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지를 되새겨 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황금종려상을 탄 작품이니 한 번쯤 봐야지 하는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극장에 가시면 곤란하다. 이 영화를 보고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되새기고 대책마련에 고심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극장 문턱을 넘으시기 바란다. 기생충은 한편의 아름다운 역사적 대서사시가 아니라 한국의 물질사회와 극단적 자유주의가 낳은 비극을 다룬 한 편의 시대극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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