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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성폭행범 감형' 재판부 이례적 해명
"원심, 피해자 어머니 진술만으로 유죄 인정…형소법 간과"
2019-06-17 17:53:12 2019-06-17 17:53:12
[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학원장에 대해 감형 판결한 2심이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피해자의 법정진술 없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결 이후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한규현)는 지난 13일 선고된 이모씨의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간) 사건 판결에 대해 17일 자료를 내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으로부터 직접 폭행·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고, 조사관이 '그냥 누르기만 한 거야?'라는 취지로 묻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라며 "이를 통해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을 누른 경위, 누른 부위,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 피해자가 느낀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원심은 ‘피고인이 자신을 누르고 성폭행을 가했다’는 진술 등을 토대로 피해자가 피고인이 피해자를 누른 것은 강간죄에서 폭행 및 협박에 해당하다고 판단했다”면서 “피고인의 범행과 관련해 경찰조사가 불충분하게 이뤄져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을 누르게 된 경위와 그 유형력의 행사 정도, 피해자가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느낀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경찰 진술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돼 재판부는 검사에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할 것으로 적극적으로 권유했고 증인채택이 이뤄졌지만, 피해자가 출석하기 힘들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피해자 어머니가 원심 법정에서 진술한 것을 토대로 원심은 유죄의 증거로 삼았지만, 피해자의 법정 진술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계속해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공소장 변경 신청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무죄가 선고돼야 하는 사안”이라며 “형사소송의 목적에 비춰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하지 않고 이 사건 공소사실의 범죄사실을 직권으로 인정해 유죄판결을 선고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일부 언론사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을 묶은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재판부가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보도했지만,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묶은 게 아니고 잡아 누르는 방법이었기에 오보”라며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지난해 4월 자신의 집에서 당시 만 10살이던 초등생에게 음료수에 탄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받았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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