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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풍경)한국 근·현대사 100년 서린 북촌 골목길
2019-08-13 16:45:59 2019-08-13 16:45:5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북촌은 한국 근현대사의 숨가쁜 변화, 그 중심에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개항과 개화, 일제강점과 광복, 전쟁의 전환기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공간이자, 지난 백년 선조들의 삶과 숨결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지난 7월부터 관련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촌, 열한 집의 오래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한 세기에 달하는 북촌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부터 6.25 전쟁 이후 시기까지, 북촌 주민들의 생생한 삶을 복원하며 근현대사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들을 훑어줍니다.
 
'북촌, 열한 집의 오래된 기억' 입구에 들어서면 북촌의 100년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이 펼쳐진다. 사진/뉴스토마토
 
"이 곳에 오래 새겨진 기억은 오랫도록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이 글귀와 함께 북촌 100년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영상이 흘러갑니다. 왜 우리의 근현대사와 밀접한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연결시켜 눈 앞에 보여줍니다. 
 
북촌은 본래 궁궐과 가깝고 도성 내 가장 살기 좋은 지리적 위치 덕에 왕실 종친과 권문세가의 집터였던 곳입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과 고종 집권 이후 개항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주도세력이 살던 넓은 집터들은 몰수되고 근대적 교육 기관과 시설들이 들어서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운동의 근원지이자 교육의 중심지였고, 광복과 6.25 전쟁 때는 피란과 납북, 새로 들어오는 주민들로 북적이는 도시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전시는 그간 대중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던 11개의 '북촌사람들' 집터를 돌며 그 시대와 당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해줍니다.
 
왕실종친 이재완이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시계. 사진/뉴스토마토
 
가장 먼저 전시에서 소개하는 건 구한말 왕실 종친들의 삶입니다. 그 중 흥선대원군 둘째 형인 흥완군의 양자로 입적된 이재완은 대표적인 왕실 종친으로 소개됩니다.
 
그는 1875년경부터 1950년대까지 100년 가까이 북촌 중심이라 하는 가회동 30번지 맹현 일대에 거주했습니다. 왕실 종친으로 엄격한 가풍을 지키면서도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여 일상과 의례를 바꿔나갔습니다. 당시 가족들은 집에 고용된 20여명을 아랫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며 인간적으로 존중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까지 그와 그의 가족들 삶을 통해 왕실 종친들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북촌에는 개화 추진의 핵심 세력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도 거주했습니다. 이들은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근대화를 이루려 했으나, 청의 무력 개입으로 실패하고 맙니다. 
 
전시는 이들의 삶을 자세히 조명하면서 외세에 의한 근대화 물결을 소개합니다. 개화 세력이 살던 넓은 집터가 몰수되고 그곳에 학교와 근대 시설이 들어서는 흐름으로 나아갑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자결로 항거한 민영환의 집을 보여주고, 전기와 전차, 전화가 도입된 직후의 변화 양상들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손병희에 의해 창립한 천도교와 국민교육회 등 북촌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정치, 사회, 종교 단체들도 보여줍니다. 훗날 이들은 일제의 압력에 맞서 3.1운동의 민족적 거사를 일으키는 기반이 됩니다.
 
일제강점기 북촌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학술단체 진단학회'를 창립한 이병도가 거주했고, 한국 민속학의 개척자 송석하를 비롯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등이 살았습니다.
 
시사만화가 김성환이 북촌 풍경을 오일 파스텔화 기법으로 그린 그림. 사진/뉴스토마토
 
전시 한켠에 큰 비중을 두고 걸린 시사만화가 김성환의 '가회동 골목' 그림은 이 전시의 핵심 주제를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오일 파스텔화 기법으로 그는 일제강점기 직후인 1960년대 북촌 가회동 일상을 그려냈습니다. 빼곡히 밀집한 도시한옥과 골목길 동네 주민들, 집 마당의 생활상은 이러한 기억 단편들이 결국 북촌과 우리 근현대사 100년의 기억을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현대로 가는 길목에는 100여년 간 지켜져오고 있는 대한민국 4대 대통령 윤보선의 생가도 등장합니다. 일찍이 일본과 영국 등 해외 유학을 다녀온 그가 시대 흐름에 구애 받지 않고 꾸민 집안은 이국적이며 또한 전통적입니다. 한국의 삼태국 문양, 중국의 당삼채 색, 서양의 그릇 형태, 화병과 장식품, 장비꽃 등은 그 만의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전시의 대표 코너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지난 시점부터, 전시는 북촌 주민들의 미시적 삶에 더 주목하며 나아갑니다. 창덕궁에 인접한 원서동 빨래터와 공동수도, 화장실 등의 사진과 당시 용품들이 등장합니다. 1950년부터 20년간 미용 보조원으로 일하고, 이후 오늘날까지 원서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발사 김창원씨의 영상 인터뷰와 북촌 풍경과 주민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카메라로 캐치한 임인식씨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북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오픈한 전시는 오는 10월6일까지 진행됩니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광복 74주년인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가보면 의미있을 전시입니다. 현재 북촌이 만들어진 생생한 증언들로 한국 근현대사를 더 폭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서울역사박물관 '북촌, 열한 집의 오래된 기억' 특별전.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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