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실패에서 교훈 얻어야
입력 : 2019-08-20 06:00:00 수정 : 2019-08-20 06:00:00
장구한 역사는 절대 영광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기억하기 싫은 비련과 치욕도 뒤엉켜있다. 이러한 양면을 모두 기억할 때 발전의 희망이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15일 광복 74주년을 희비가 엇갈리는 감정 속에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착잡한 심정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한일 양국이 정면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현 지배체제는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환상 속에 빠져있는 듯하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할 의사는 없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자기네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 아우성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도쿄의 빌딩숲 이면에는 이처럼 어리석은 봉건적 지배욕이 용솟음치고 있다. 일본을 걱정해줄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이대로라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일본은 이 길을 가고 있는가. 폐허가 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그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것일까.
 
프랑스도 한 때 일본처럼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나폴레옹의 세계정복 의지는 이후 북아프리카와 중동, 인도차이나 식민지배로 이어졌다. 그러나 영광 뒤엔 반드시 좌절이 있듯 프랑스인들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게 나라를 빼앗기기도 했다. 이런 시련 속에서 교훈을 얻은 것일까. 프랑스는 이따금 과거의 빚을 갚는 양심적인 모습을 보인다.
 
지난 15일은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해방된 날이기도 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남부 바르(Var) 지방 쌩 라파엘(Saint-Raphael) 시에서 프로방스 상륙작전(debarquement de Provence·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프로방스 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프리카 병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희생을 재조명할 것을 다짐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 마크롱 대통령은 밀짚모자를 쓰고 맨 앞줄에 앉아 있는 퇴역군인들과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알파 콩데(Alpha Conde) 기니 대통령, 알라산 우아타라(Alassane Ouattara) 코트디브아르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프랑스 해방을 위해 노력한 군대의 아주 많은 병사들은 북아프리카의 프랑스인들, 알제리·모로코·튀니지의 저격병, 알제리 보병, 아프리카 원주민 기병들, 토착민 병사, 세네갈 저격병, 기니와 코트디부아르 병사 등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그러나 우리들 중 그 누가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독일 나치를 무찌르기 위해 이들 병사들 모두는 일심동체로 단합했다. 수천만 명이 그 때까지 발 한번 디뎌보지 못하고,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머나 먼 이국땅(프랑스)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다"라고 추모하며 "나는 오늘 아프리카의 자긍심을 일깨워 준 이 병사들을 기억하기 위해 프랑스의 시장들에게 거리, 광장, 건축물, 기념식 등에 이들의 이름을 붙일 것을 당부한다. 그들은 저항 정신으로 용기 있게 단합했다. 그러나 이 용기 있는 아프리카 병사들은 수십 년간 정당히 평가받지 못했고 공적도 인정받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달리 프로방스 상륙작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작전은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해방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45만 명의 병사가 작전에 참여했고, 이 중 26만 명은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왔다. 작전 참여인원 중 절반이 넘는 병사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국땅 프랑스를 위해 사투를 벌였지만 그들의 노고는 반세기 넘게 조명을 받지 못했다. 75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평가를 하기 시작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희생된 아프리카 병사들을 영웅으로 재조명하고 나선 마크롱 대통령의 인간다운 리더십이 꽤 멋져 보이고 감동적이다.
 
이런 마크롱 대통령의 모습에 불현듯 아베 총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두 인물의 리더십이 묘하게 비교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비교는 허무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의 자질과 그릇은 각기 다른데 절대적인 비교를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베 총리에게 마크롱 대통령을 기대하지 말자는 뜻이다. 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프랑스가 일본이 될 수 없듯 일본도 프랑스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일본이 세계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과거사를 부인만 하지 말고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점도 깨우쳐야 한다. 왜곡된 역사 인식을 고수한 채 페어플레이를 포기하고 경제보복이라는 반칙으로 이웃나라를 압박만 한다면 언젠가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고 말 것이다.
 
국사와 인간사는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적보다 친구가 많은 인간이 성공적인 인생을 꾸려나가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치가들은 이점을 되새겨 이웃나라를 더 이상 적으로 돌리지 말고 친구로 만드는 외교 전략으로 선회해야 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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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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