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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벤처는 아직 배고프다
2019-09-05 06:00:00 2019-09-05 06:00:00
4조원. 올해 말까지 국내 벤처업계에 신규 투자될 것으로 전망되는 자금의 규모다. 신설 법인 수도 역대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제2벤처붐'이 일 것이란 기대감이 충만하다. 하지만 정작 관심의 주인공인 벤처 업계에는 자축의 기대감보다는 오랜만의 관심이 쉬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는 우려가 더 큰 듯하다. 
 
지난 28일부터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제19회 벤처썸머포럼'은 이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작심한 듯 국내의 벤처 생태계에 대한 쓴소리를 토해냈다. 그는 기자간담회를 포함한 여러 자리에서 "지금까지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던 기업들은 총 7만개에 이른다"며 "이들의 역량을 잘 활용해왔더라면 일본이 수출 규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의 역할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방지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추구하는 선의의 정책들이 되려 벤처기업들의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술탈취방지법이 시행된 시점부터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의 신기술 개발 소식이 뜸하게 들려왔다는 게 안 회장의 주장이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벤처·스타트업 육성의 필요성에 다시금 공감한 것은 다행이지만 지원의 규모나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많은 자본이 필요한데, 지금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테마로만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중에서도 서비스나 소프트웨어쪽으로 투자가 편향되고 있어, 보다 많은 파트너들과 공생해야 하는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은 여전히 어렵다"이 관계자는 토로했다. 
 
이 같은 의견들은 자연스레 지난 10여년의 벤처 업계를 향한 관심 부족에 대한 불만과 자성으로 이어졌다. 고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업계를 대표할 만한 얼굴이 없다는 것. 업력이 10년 안팎인 젊은 기업인들을 중심으로는 "세대교체의 타이밍을 놓쳤다"는 토로도 이어졌다. 창업 13년차의 한 기업인은 "최근 스타트업 창업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코리아스타트업포럼에 가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며 "벤처기업협회 내 초기 창업자들이 목소리를 낼 만한 여지가 크지 않다"고 전했다. 
 
최근의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관심과 열기, 그 자체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정부도 생색내기가 아닌 이들을 진정한 경제 주체로 키워내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럴수록 업계에서는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목소리를 더 크게 내기 마련이다. 이를 단순히 불만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배고픈 벤처업계를 배불리 만들어 줄 수 있는 경청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김진양 중기IT부 기자(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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