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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유럽 가전이 '명가'라고 불리는 이유
2019-09-09 17:25:31 2019-09-10 14:01:49
 
산업1부 권안나 기자.
[독일 베를린=뉴스토마토 권안나 기자] 독일에서 열리는 'IFA 2019' 출장을 위해 베를린을 찾은 첫 날, 현지 체류중인 가이드가 호텔로 가는 길을 안내하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고 주변 공원들을 수 차례 소개했다. 처음에는 박람회 취재 일정을 소화하기도 바쁜데 여유있게 '산책' 이야기를 꺼내는 게 와닿지 않았는데, 며칠 그 곳에 머물러 보니 이해가 됐다
 
베를린은 녹지가 40% 이상을 차지하는 도시다. 개발보다는 보존, 즉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가이드가 가리킨 공원 중 하나인 '티어가르텐'은 옛날 옛적에 사냥터로 사용한 구역을 그대로 보존해 도심 한 가운데 떡하니 놓여있는, 축구장 200개 규모의 산림욕 공간이다. 굳이 티어가르텐이 아니어도, 베를린은 산책과 조깅이 지극히 일상적일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걸 내딛는 걸음마다 느낄 수 있다. 
 
비단 독일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환경에 국한되지 않았다. 동서를 갈랐던 베를린 장벽의 흔적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블럭으로 남아 살아있는 역사가 됐고, 100세를 넘기는 게 예사인 도시 내 건물들은 낡았지만 근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래된 집을 부수고 새로 짓기 보다는 보수해서 다시 사용하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일과 같은 일상생활 속에도 이들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독일 혹은 유럽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생기니 IFA 2019 박람회장에서 만난 유럽 가전 업체들의 본질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단순히 규제를 맞추기 위한 기술 개발의 차원을 넘어선, 생활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쓰레기와 오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가전제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인공지능은 세탁물의 양과 재질, 오염도에 따라 세제의 투입량을 조절하는 데 쓰이고, 세척을 마친 그릇은 인위적인 히터가 아닌 친환경 냉매와 온도차를 활용한 원리로 빠르게 자연 건조된다. 
 
이쯤되니 환경의 차이가 사람을 차별화한 건지, 사람의 차이가 환경을 차별화한 건지 궁금해졌다. 각박하고 치열한 한국에서의 삶이 기반인 기자에게는 산책이라는 단어조차 사치로 느껴졌다는 걸 인지하니 조금은 서글픈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닌 듯 하다. 그들안의 '공존 본능'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대를 타고 확산하면서 그들을 '지속가능한' 집단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성장의 정점에 이르러서야 유사한 고민을 시작한 우리네 기업들이 유럽의 '명가'에게 배워야 할 대목이다.  
 
독일 베를린=권안나 기자 kany87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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