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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30-새 100년의 5대 문명국가, '더나은 삶 10위' 국가
"다음 100년은 어떤 비전을 가진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드·소프트파워 공존 필요…경제적·사회적 가치 양립해야"
2019-09-30 07:00:00 2019-09-30 08:35:17
30년 뒤 2050년 대한민국은 어떤 국가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올해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된 해다. 내년 2020년부터 대한민국은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다. 지난 100년은 3·1운동으로부터 해방 이후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 87년 민주화, 2016년 촛불혁명을 거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이제 다음 100년은 어떤 비전과 내용을 가진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

지나온 100년의 성찰, 앞으로 갈 100년의 기획

지난 100년은 곧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정의 꿈이 이뤄지는 100년이었다. 1919년 대한제국이라는 왕정체제에서 민주공화정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100년 동안의 역사는 근대 민주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미국은 1776년 독립전쟁 이후 영국의 왕정에서 독립, 공화정을 수립했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왕정을 끝내고 민주공화정을 선포했다. 민주공화정이 수립된 100년이 지나 미국과 프랑스는 지난 100년을 기억하고 새로운 100년의 미래비전을 제시했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과 프랑스 에펠탑은 그 상징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건 물론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사회통합과 미래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에펠탑에도 프랑스혁명의 정신과 사회통합에 대한 열망을 기리고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왕정에서 민주공화제로 정체가 변하는 것 외에도 한국만의 고유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중국은 신해혁명 이후 공화정을 선언했다. 아시아에선 터키에 이어 두번째였다. 하지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사회주의로 변했다. 일본은 입헌군주제에서 출발, 현재 평화헌법 체제에 이르렀으나 시민운동에 의한 민주주의를 거치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1919년에 민주공화정을 수립한 이후 고비마다 시민운동이 촉발했고, 2016년 촛불혁명까지 거치면서 시민적 공화주의를 지속적으로 성숙시켜 오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건 물론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사회통합과 미래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사진/플리커
 
'두개의 100년' 기념사업에 국민 관심 모아야
 
그런데도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기념비적 사건이 너무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다. 한일관계가 첨예해지는 지금 한국은 일본을 넘어설 100년의 미래 상징물과 국가비전을 준비하는 게 절실하다.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 '국가비전 2045'가 달성된다고 가정하면 2030년엔 1인당 국민소득(GDP)에서 일본을 넘어설 것이다. 지금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1000달러로 일본(3만9000달러)의 80% 정도다. 2045년 이후 한국의 국가비전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교육, 문화 등에서도 일본을 넘어설 미래의 약속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 상징물과 국가비전 마련에 서둘러선 안 된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선언(1776년) 100주년이 지나고 8년 뒤에 세워졌다.

아쉬운 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내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했다는 점이다. 이제 올해도 3달이 채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에 국민 모금운동을 전개, 100주년 기념물 조성과 국가비전 마련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일각에선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상징 조형물 건립 모금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대한공공정책학회는 4월11일부터 '국민 1인당 1만원씩 내기'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 8월에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전문가 토론회도 열었다. 5000만명이 1만원씩 내면 5000억원, 500만명이 1만원씩 내더라도 500억원의 성금이 모인다. 실제 성금은 10억원 이내일 가능성이 크지만, 민간의 자발적 성금이라는 점에서 그 정도만 모여도 모금운동은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적 상징성을 보다 더 키우려면 민간에서 먼저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국가가 재정적으로 지원해 민관 합동으로 미래 상징물을 건립하는 게 이상적이다.

미래 상징물이 미래를 지향하면서도 과거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는 조형물이라면, 국가비전은 온전히 새로운 100년의 대한민국에 관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대외적 아젠다는 '세계평화', 대내적 아젠다는 '더나은 삶(Better Life)'가 되는 게 옳다.
 
7월14일 재외동포 대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대한독립만세! 100년 전 그날로 돌아가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비전의 두 축 '세계평화'와 '더나은 삶'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은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류가 전쟁에 대해 반성하던 시기였다. 파리강화회담에선 세계평화에 대한 인류의 갈망이 증폭됐다. 아시아에서도 중국의 상하이를 중심으로 세계평화에 대한 공론이 형성됐다. 임시정부는 이런 희망을 안고 상하이에서 문을 열었다. 그해 4월11일에 선포된 임시정부의 헌법 <임시헌장>이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조항을 담고, 제7조에 '대한민국은 신(神)의 의사에 의해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고 나아가 인류문화 및 평화에 공헌하기 위해 국제연맹에 가입한다'는 조항을 넣은 건 이런 시대정신을 반영해서다. 세계평화는 과거 100전에도 건국의 정신이었으며, 미래 100년에도 국가비전의 핵심가치로 자리 잡을 것이다.

세계평화와 '더나은 삶'이라는 국가비전의 구체적 미래상은 '세계 5대 문명국가(Civilization-5), 더나은 삶 10위(Better Life-10)'다. 세계 5대 문명국가는 기존에 한국의 국가비전으로 제시된 중견국 비전이나 강소국 비전의 좁은 틀을 비판한 것이다. 한국은 중견국이나 강소국을 지향하는 작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200여개 나라 중에서 경제규모 10위의 나라에 걸맞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 세계 5대 문명국가는 정치군사적인 강대국 비전이 아니다. 세계는 하드파워가 아니라 소프트파워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세계 5대 문명국가는 문명과 문화라는 소프트파워를 핵심적 자산으로 하는 국가비전이다. 

장차 세계는 국가의 역할이 줄어들고 다양한 글로벌 주체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시대가 될 것이다.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 다국적기업, 글로벌화된 개인 등 다양한 주체가 등장하면서 국경의 개념은 줄어들고 국력으로만 평가하는 시대가 저물어간다. 앞으로는 '국가'의 대체 개념으로써 '문명'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비전과 미래전략에서 문명 개념을 도입, 문명국가(Civilization State) 비전을 제시하는 건 이런 맥락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2050년이 됐을 때 문명국가의 개념으로 보면 세계를 주도할 문명권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21세기에는 중국과 미국이 패권경쟁을 하는 시대가 될 것이고,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부상할 것이라고 인식한다. 문명의 충돌과 공존의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의 100년엔 미국문명과 중국문명, 유럽문명, 인도문명 등 4개 문명이 상수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부상할 걸로 예상되는 게 한국문명, 일본문명,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세안-이슬람문명, 러시아문명, 브라질문명 등이다. 패권경쟁과 문명의 충돌이라는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지정학적 이점과 소프트파워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5대 문명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문명국가 비전은 패권 중심의 중국과 미국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문명충돌이 격화되면 그 문명의 단층선인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윌리엄 그레이엄은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이런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문명의 변경에서 새로운 문명이 창출된다는 것이 인류역사의 경험이다. 한국 문명은 중국 문명과 서구 문명을 모두 수용한 포용문명으로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 문명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주의와 대비되는 평화주의의 문명국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새 100년을 위한 국가비전은 온전히 '새로운 100년의 대한민국'에 관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대외적 아젠다는 '세계평화', 대내적 아젠다는 '더나은 삶(Better Life)'가 되는 게 옳다. 사진/플리커
 
더나은 삶 10위…경제적 가치에서 사회적 가치로

대내적 국가비전인 '더나은 삶 10위(Better Life-10)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선언이어야 한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추구한 핵심가치는 경제성장 제일주의라는 물질주의적 삶이었다. 한국은 제3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이 가치를 성취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 결과는 세계 10대 경제강국 달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모든 걸 말해주는 시대는 끝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경제성장 중심에 대한 반성으로 경제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포함하는 '더나은 삶'을 인류의 미래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더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를 개발해 지표로 활용 중이다. 여기서 OECD는 주택과 일자리, 소득이라는 물질적 요소 외에도 건강, 삶의 만족도, 일과 삶의 조화, 공동체 등 다른 비물질적 가치를 제시하고 잇다.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로 갈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위해 다른 사회적 가치를 희생해 왔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경제규모 10위라는 성취를 이루어 냈다. 하지만 '더나은 삶'의 지수에서 보면 OECD 회원국 40개국 중 29위에 머물러 있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성장을 위해 사회적 가치를 희생하는 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경제적 삶과 사회적 삶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다. 주거와 소득, 일자리, 교육, 공동체, 환경, 정치참여,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11개 범주가 균형적 조화를 이루도록 국가비전을 재설정할 것인가의 기로에 섰다. 앞으로 30년 후에는 현재 29위에 머물러 있는 OECD '더나은 삶' 순위를 10위까지 견인하는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30회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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