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그래미 밴드’ 멈포드 앤 선즈, 내한 역사에 획을 긋다
15일 거대 ‘음악 성지’로 변한 홍대…공연 전부터 외국인들 ‘인산인해’
음향 사고에도 민첩성 발휘, 객석과 호흡하며 즉흥 어쿠스틱 무대
입력 : 2019-11-18 17:59:05 수정 : 2019-11-18 17:59:0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15일 밤 9시 경, 서울 마포구 인근 무브홀. 노래하던 마커스 멈포드가 들짐승처럼 객석으로 돌진했다. 지글거리는 기타, 영롱한 건반 소리가 교차하던 곡 ‘Ditmas’ 2절의 순간. 열렬한 함성을 쏟아내는 관객 파도를 헤집고 그는 무대 뒤편까지 헤쳐갔다. 야수 같은 모습으로 메인콘솔 꼭대기에 섰다.
 
? 마이크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암전된 무대, 열광하던 관객 700명이 멈춰버린 순간. 누군가가 속삭이는 한국말이 공허히 맴돌았다. 당황스런 표정으로 마이크를 툭툭 치며 내려온 마커스를 두고 여기저기 수근거림이 일었다. 공연 1시간 만에 잠시 중단된 영국 밴드 멈포드 앤 선즈의 첫 내한 단독 공연.
 
15일 밤 9시 20분 경, 음향 사고 이후 객석으로 내려가 즉흥 공연을 연 멈포드 앤 선즈.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모두가 허탈하게 웃음짓던 그 순간 돌연 마법이 펼쳐졌다. 마커스가 즉각 다른 멤버들을 대동해 아예 객석 중앙으로 내려왔다. ‘잠시 전력이 나간 것 같다던 멤버들은 예정에 없던 즉흥 무대를 펼쳤다. 마이크 없이 어쿠스틱 기타, 멤버들의 목소리만으로 빚어진 성가 같은 무대. 관객들은 흡사 원형 광장 같은 모양새로 인간 띠를 그리고 앉았다.
 
드라이아이스로 덮인 홀이 안개 자욱한 새벽처럼 변했다. 마커스의 통기타 쇠줄 진동에 얹히는 멤버들의 화음(‘Timshel’)이 꼭 성지를 순례하는 이에게 내리는 아름다운 성수 같았다마커스 제안 덕에 모두가 핸드폰을 내려 놓은 다음 순간, 홀은 거대한 음악 성지로 변했다우아하고 성스러운 멜로디는 관객들 숨 사이를 가로 질러 700명의 고요한 합창이 됐다.
 
당신의 두 눈에 담긴 사랑/ 당신의 마음에 담긴 사랑/ 너에 대한 사랑/난 너와 영원히 함께 할 용기가 있네’(‘Forever’)
  
벤 로베트(왼쪽부터), 마커스 멈포드, 윈스톤 마샬, 테드 드웨인.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2013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밴드는 전 세계 아레나급 투어를 도는 슈퍼밴드’. 하지만 충분치 않은 국내 음반, 음원 세일즈 지표 때문에 이번 한국 공연은 70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저녁 730분부터 무브홀은 영국 런던으로 변해버렸다. 소문을 듣고 물밀 듯 밀려온 외국 팬들이 육안으로 딱 보기에도 한국 팬들보다 많았다. 공연장 앞 직원은 영어로 안내를 했고, 표를 구하지 못한 외국팬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긴 줄을 섰다.
 
영국 런던 한복판으로 변해 버린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공연장 무브홀.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저녁 813, 록의 폭발과 포크 잔향을 뒤섞은 이들의 음악은 뒷배경으로 걸린 4마리의 야생마처럼 질주를 시작했다. 밴조와 만돌린 등 전통 악기를 레저네이터 기타, 중독적인 신스에 섞어내는 이들의 음악은 독특하면서도 폭발적이었다. 3번째 곡 ‘The Cave’ 때 테드 드웨인이 콘트라베이스를 뜯기 시작하자 영어로 미쳤다는 웅성거림이 현장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다양한 악기에 능한 멤버들은 거의 사기에 가까웠다. 기타를 들고 노래하던 마커스는 어느 순간 드럼에 앉아 있었고,('Below My Feet') 밴조를 들던 드웨인은 기타와 콘트라베이스를 자유 자재로 오갔다. 정신을 차려보면 네 멤버가 모두 투명한 바람 같은 화음을 넣고 있었다.
 
15일 무브홀에서 열린 멈포드 앤 선즈 공연.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소극장 무대의 장점을 한껏 활용한 공연은 숨결처럼 와 닿았다. 드럼 스틱이 공중으로 날아갈 때, 야수처럼 객석으로 돌진할 때, 음향 사고 뒤 민첩하게 즉흥 무대를 꾸밀 때, “광장 시장에서 커피를 마셨다며 첫 한국 방문의 설렘을 털어놓을 때.
 
밴드의 대표곡 'I Will Wait'는 이날 공연의 대미. 앙코르 3곡 중 마지막으로 뽑은 이 곡이 홀 중간에 큰 벽처럼 늘어섰던 외국인들을 들썩였다. 190미터 쯤 돼 보이는 장신들이 흡사 행사장 풍선처럼 움직이며 거대한 떼창을 뿜었다
 
서울에서 체험한 런던 공연, 그래미 밴드의 다시 없을 공연. 내한 역사에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든 멈포드 앤 선즈는 그 자리에서 다음 공연을 약속한 뒤 무대를 내려갔다.
 
테드 드웨인.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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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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