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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정보법 개정 합의 이뤘는데…'고객동의 의무' 어깃장에 금융권 울상
여야 "'본인정보 활용 거부권' 보장하고 규제 완화" 합의…"동의한 정보만 활용해라" 지상욱 반대로 불발
2019-11-27 15:15:00 2019-11-27 15:15:00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핵심법안인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불발 위기에 놓이면서 국내 금융산업의 퇴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여야 합의로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거부권을 보장해주는 장치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한 명이 개인정보 침해 우려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1년 넘게 논의해온 법안이 물건너 가게 생겼다. 개인의 동의를 받은 정보만 가공, 활용하라는 것인데 금융권에서는 규제 완화라는 신용정보법 개정 취지가 훼손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비쟁점 법안으로 국회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던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금융정보의 데이터 활용도는 높이고 개인정보보호는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상업적 통계 작성, 연구, 공익적 기록 보존 등을 위해 가명정보를 신용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이용하거나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금융권과 공공기관 등에 흩어진 개인 신용정보를 통합해 개인이 이를 조회·관리·활용할 수 있는 마이데이터(MyData) 산업 도입의 바탕이 되는 법안이기도 하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데이터 경제 활성화에서 첫 단계로 꼽히는 법안이지만 지난 1년간 국회에 계류됐다가 '개인정보보 활용'에 대한 기존의 규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최근 국회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정부와 여야는 익명 처리된 개인의 가명정보라 하더라도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최소한의 '정보주권 보호장치'를 마련했다. 특정 개인이 본인의 정보가 익명으로 가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금융회사 등 제3자가 정보를 활용할 수 없게 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거부권을 행사한 개인정보 이외의 가명정보는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다.
 
이 방식을 제안한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은 "교통사고가 우려된다고 해서 운전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며 "차선이나 신호등과 같은 교통체계를 개선하면서 자유롭게 운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신용정보법 개정안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의 또 다른 목표는 학생이나 주부처럼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씬파일러(thin filer)'의 비금융정보를 활용해 신용등급을 개선해주겠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제도권 금융을 활용하지 못하는 씬파일러 규모가 1100만명이 넘는데, 이들의 가명정보까지 일일이 동의를 받아 활용하라고 한다면 신용등급 개선 효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의 첫 관문인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는 이 같은 방안이 담긴 법안 통과에 여야 모두 찬성했지만,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에 대한 불신을 주장한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의 반대가 발목을 잡았다. 관례상 법안 심사는 합의제라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반대할 경우 통과가 어렵다.
 
정부와 여야의 최종 합의안에 반대하는 지 의원이나 시민단체의 명분은 개인정보에 대한 '개인정보 인권'이다. 개인정보를 비식별해 가명 처리한다고 해도 퍼즐을 조합하면 누구의 정보인지 특정할 수 있다는 정보유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개인동의 없이는 어떤 방식으로도 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익명이든 가명이든 개인 동의 없이 활용하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으니, 모든 사람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안에 명시된 것 외에는 활용할 수 없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다.
 
금융당국과 업권에선 이런 갑론을박 자체가 해묵은 논쟁이라고 지적한다. 신용정보법 개정안 취지 자체가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새로운 접근인데, 정보 유출이라는 우려를 들고 나온다면 논의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산업에서 데이터는 미래의 먹거리로 불린다. 이미 미국 등 주요국들은 익명처리된 비식별 정보를 모두 보호대상에서 제외하고 민감한 정보가 아닐 경우 모두 정보를 활용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국내 신용카드사나 핀테크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신용정보법 개정을 전제로 신사업을 준비 중인데, 법안이 불발되면 예산이나 조직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카드사들의 경우 당국이 카드업계 경쟁력 강화방안으로 신용정보 활용 규제를 완화하면서 다양한 신용정보사업을 마련하고 있다. 
 
한 금융지주사의 카드사 관계자는 "업계 1위인 신한카드만 보더라도 2500만 고객과 440만 개인사업자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적인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고 기존의 금융정보가 부족한 영세사업자에 대한 맞춤형 금융지원을 내놓겠다는 것"이라며 "신용정보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출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회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던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 사진은 국회 정무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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