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리듬)'세계경영' 꿈꾼 '대우맨', 영욕의 39년
입력 : 2019-12-11 15:00:52 수정 : 2019-12-11 15:00:52
 
 
[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앵커]
 
별세 이틀째인 현재까지도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가 마련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경영, 탱크주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등의 어록과 일화에서 볼수 있듯이 왕성한 경영활동을 벌여왔던 김 전 회장의 일생을 취재기자와 함께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산업부 전보규 기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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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뉴스토마토 최원식·표영주 디자이너
 
전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
 
김 전 회장의 장례식장은 수원 아주대병원에 차려졌는데요. 장례식은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소박하고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문은 10일 오전부터 시작됐는데 재계와 정계 등 각계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을 비롯해서 장영수 전 대우건설 사장,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등 '대우맨'들이 빈소를 찾았습니다.
 
재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이 빈소를 찾았습니다.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사무처장을 지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원희룡 제주도지사,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등도 다녀갔습니다.
 
영결식은 내일 오전 8시에 거행될 예정입니다.
 
[앵커]
 
김우중 회장은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있나요.
 
[기자]
 
하나같이 훌륭한 기업인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김용호 한국GM 사외이사는 "우리나라 주요 산업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여러 사업체를 일군 공이 있다"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같은 경우는 "차나 비행기에서 쪽잠을 자면서 쉬지 않고 일했다"면서 "엄격하지만 자상하고 직원들을 끔찍하게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손경식 CJ그룹 회장도 "압축성장 시기에 대표적인 경영인"이라면서 "경제를 빨리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했습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애국자였다"고 회고했습니다.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에 먼저 진출해 기틀을 잡으면서 롯데도 해외 진출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최원식·표영주 디자이너
 
[앵커]
 
김우중 전 회장은 샐러리맨의 우상이자 신화를 썼다고 평가되는 분이죠.
 
[기자]
 
김우중 전 회장은 1960년 한성실업에 입사해서 일을 하다가 19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한 뒤 30년 만에 자산총액 77조원에 가까운 대우그룹을 키웠습니다. 창업 당시 나이는 31살이었습니다.
 
대우실업을 창업한 첫해 싱가포르에 트리코드 원단과 제품을 팔면서 58만달러의 수출실적을 냈고 이를 토대로 1968년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 급성장을 거듭했습니다.
 
1969년에는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지사를 설립했고 인도네시아와 미국 등으로도 의류, 원단을 수출하면서 발을 넓혔습니다.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뒤 김 전 회장이 이끄는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 창구가 됐습니다.
 
이후에 한국기계(1976년)와 새한자동차(1978년), 대한조선공사(1978년)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단기간 내에 경영정상화를 이루면서 우리나라의 중화학 산업화를 선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사들은 나중에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대우조선이되는 곳들입니다.
 
같은 시기 에콰도르(1976년)와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1982년대에는 무역과 건설 부문을 통합해 (주)대우를 설립하고 그룹화의 길에 들어선 후 자동차와 중공업, 조선, 전자, 통신, 정보시스템, 금융, 호텔, 서비스 등 전 산업에서의 내실을 갖추고 세계 진출을 본격화했습니다.
 
김 전 회장이 거침없이 회사를 확장하면서 대우는 창업 15년 만에 국내 4대 재벌이 됐습니다. 특히 해외 영업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 김 회장은 박정희 정권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업인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1990년대말까지 승승장구하면서 회사를 키웠고 대우그룹을 재계 2위까지 올려놨습니다.
 
[앵커]
 
김우중 전 회장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란 말이죠.
 
[기자]
 
김 전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이기도 하지만 세계경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말씀하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란 것은 김 전 회장이 출간한 책인데요 제목에서부터 김 전 회장의 생각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앞서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70년대에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고 1990년대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폴란드와 헝가리,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자동차 공장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는 등 동유럽을 거점으로 삼고 세계경영을 본격화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1년 중 280일을 해외에서 체류할 정도로 해외 경영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세계경영을 본격화하면서 해외에서의 고용인원은 90년대 초 2만명 수준에서 15만명 이상으로 크게 늘었고 나중에는 25만명까지 확대됐습니다. 1998년 기준으로 보면 대우의 수출액이 186억달러였는데 당시 우리나라 수출 총액 1323억달러의 14% 정도입니다.
 
[앵커]
 
김우중 전 회장이 신화로만 기억되고 있는 것은 아니죠.
 
[기자]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은 1990년 말. 좀 더 정확히는 IMF 전까지의 얘기입니다. 대우그룹은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무너지게 됩니다.
 
대우그룹은 거침없는 확장을 하면서 부채비율이 400%에 달했고 정부는 부채비율을 200% 정도로 내리라고 했지만 계속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섰습니다.
 
1998년에는 대우차와 제너럴모터스 합작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이 기업어음과 회사채 발행 제한 조치를 하면서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습니다.
 
대우그룹은 1999년에 41개사였던 계열사를 10개로 줄이는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결국 1999년 8월에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습니다. 당시 부채 규모는 500억달러였습니다.
 
김 전 회장은 11월에 13명의 그룹 사장단과 함께 경영 포기를 선언하고 물러났습니다. 30년간의 눈부신 성장이 3년도 안 돼 끝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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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 전 회장의 몰락이 그룹 해체로 끝난 것은 아니었죠.
 
[기자]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에 대한 대우의 책임론이 거세지고 검찰 수사 가능성이 커지면서 해외로 도피했습니다.
 
1999년 10월 중국 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에 갔다가 사라진 건데요. 2001년에는 노동자들이 체포 결사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6년 가까이 해외 도피 생활을 하던 김 전 회장은 2005년 귀국해서 대우그룹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다음해인 2006년에 징역 8년 6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21조원 정도였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액입니다.
 
김 전 회장은 2008년에 특별사면을 받아서 나왔습니다. 추징금은 800억원 정도만 냈습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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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특별사면으로 나온 뒤에는 주로 베트남에서 지냈다구요.
 
[기자]
 
김 전 회장은 특별사면 뒤 제2의 고향인 베트남에서 인재 양성 사업에 전념하면서 명예회복에 힘썼습니다. 2009년 결성한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통해 글로벌 청년 사업가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첫 대상지가 베트남입니다.
 
김 전 회장과 베트남은 인연이 깊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후반 공산주의 국가였던 베트남이 시장 개방과 해외자본 유치에 나섰는데 해외 기업들이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김 전 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고 해외기업 수장으로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고 대우전자 등을 진출시켰습니다.
 
김 전 회장이 해외 도피 당시에는 사실상 베트남 정부가 김 전 회장을 보호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전 회장이 건강 악화로 국내에 돌아올 때까지 머문 곳은 베트남 하노이 소재 골프장에 있는 숙소입니다. 이 골프장은 베트남 정부가 땅을 내놓고 태국 부총리가 돈을 댄 곳으로 김 전 회장의 막내아들이 실소유한 곳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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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우그룹이 해체된 뒤에 주요 계열사들은 어떻게 됐나요.
 
[기자]
 
대우그룹이 2000년에 공식적으로 사라지면서 계열사들도 다 흩어졌습니다. 모기업 대우는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로 나뉘었는데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 그룹에 인수되면서 포스코인터내TU널이 됐습니다.
 
대우자동차는 미국 GM에 매각돼 한국지엠이 됐습니다. 다른 주력 계열사였던 대우중공업은 기계부문과 철도차량부문, 조선부문으로 나뉘었습니다.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으로 가서 두산인프라코어가됐고 철도차량은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철도 부문과 통합돼 현재 국내 유일의 철도차량 제작업체인 현대로템이 됐습니다.
 
대우전자는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자립해오다가 2013년 동부그룹으로 넘어가면서 동부대우전자가됐다가 지난해 대유위니아그룹에 매각되면서 위니아대우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대우증권은 미래에셋그룹에 합병돼 미래에셋대우가 됐습니다.
 
대우란 이름을 쓰는 곳은 앞서 현재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위니아대우, 미래에셋대우 등 4개만 남아 있습니다.
 
[앵커]
 
대우그룹은 해체됐지만 '대우맨'들은 여전히 현장에 많이 남아있죠.
 
[기자]
 
대우그룹은 인재 사관학교, 경영자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현재 산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대우 출신은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입니다.
 
서정진 회장은 한국생산성본부에서 대우그룹 컨설팅을 하다 김우중 전 회장에게 임원으로 발탁됐는데 당시 나이가 34살입니다. 서 회장은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실직한 뒤 대우자동차 출신 동료들과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바이오텍을 설립했습니다. 셀트리온은 시가총액 20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국내 주식시장 시총 순위 10위안에 드는 곳입니다.
 
김현중 한화건설 대표이사 부회장도 대우건설에 입사해 해외개발 사업본부장을 지냈습니다. 2000년에 한화건설로 자리를 옮겼는데 중동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한화건설을 글로벌 건설사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박영철 바이오리더스 회장, 이태용 아주그룹 부회장도 있습니다. 박 회장은 대우그룹 해외사업담당부서에서 트럼프월드 건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이 부회장은 대우 무역 부문 대표이사,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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