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놀랍고 뜻밖이었다. 하지만 예상됐던 결과이기도 하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에게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긴 것은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한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제장편영화상’은 ‘기생충’ 수상이 확실했다. 예상대로 수상했다. ‘각본상’도 수상 가능성이 높았다. 역시 ‘기생충’의 몫이었다.
후보로 올랐던 주요 부문 중 ‘감독상’은 92년 역사에서 두 차례 아시아계 영화감독에게 수여된 바 있다.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2006년 ‘브로크백 마운틴’, 그리고 2013년 ‘라이프 오브 파이’로 수상했다. 하지만 자국 언어로 된 영화로 감독상을 받은 것은 봉 감독이 처음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수 십 년간 이어져 온 ‘하얀 오스카’ 오명과 함께 한다.
봉준호 감독. 사진/뉴시스
아카데미 시상식은 최근까지도 ‘백인 잔치’란 오명에 시달려 왔다. SNS에는 #OscarSoWhite 해시태그가 할리우드 유색 인종 영화인들 사이에 퍼지면서 ‘오스카’ 불참 릴레이가 이어졌다. 하지만 변화는 움트기 시작했다.
2017년 흑인 동성애자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문 라이트’가 같은 해 흥행과 완성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라라랜드’를 누르고 작품상을 수상했다. 작년에는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의 우정을 그린 ‘그린 북’이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멕시코 출신 세계적인 감독 알폰소 쿠아론 연출의 ‘로마’가 감독상과 촬영상 그리고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로마’의 여주인공은 멕시코 원주민이자 비전문 배우였던 얄리차 아파리시오가 맡았다.
미국 영화계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부터 인종 차별과 고립주의에 대한 반기를 들어왔다. 2017년 ‘문 라이트’와 2019년 ‘로마’의 아카데미 수상이 그에 따른 결과물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올해 ‘기생충’의 미국 내 흥행은 그 정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 차별과 고립주의에 따른 심화된 계층 분화는 다른 언어 다른 문화권의 현실을 직시하고 신랄하게 비판한 ‘기생충’의 영상 언어에 공감했다.
당초 봉 감독은 칸 영화제 출품 전 국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외국인의 시각에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코드가 너무 많다”며 ‘기생충’의 칸 영화제 수상 가능성을 ‘제로’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계층 분화와 자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블랙 코미디 ‘기생충’은 미국 사회를 뒤흔들어 놨다. 작품성과 화제성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봉준호의 장기다. 올해의 아카데미가 그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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