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무비게이션)‘드라이브’, 히어로 장르 원형과 구원의 ‘합일’
단순하고 명료한 스토리 전달, 극도로 절제된 프레임 연출+음악
‘이름 없는 남자’의 구원적 선택…불안한 현실 피상적 행복 대비
2020-09-03 00:00:01 2020-09-03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2011년 제64회 칸 국제영화제는 북유럽 덴마크 출신의 이름도 생소했던 니콜라스 윈딩 레픈에게 감독상을 안겼다. 당시 그의 손에서 탄생된 ‘드라이브’는 장르 변화 측면에서 ‘예술적’ 그리고 ‘상업적’ 경계선의 미묘한 합일점을 잡아낸 것 같은 생경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유럽 영화 특유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아우라와 할리우드의 편린을 느끼게 한 강렬한 이미지는 납득하기에 기묘했던 이질적인 영화 음악과 더해지며 전례 없던 현대적 ‘히어로’ 장르 원형을 탄생시켰다. 영화 ‘드라이브’는 코믹스 원작 영화가 2000년대 이후 상업 영화 시장에 도입시킨 ‘히어로 장르’의 날 것 그대로를 담아낸 원형적인 히어로에 가까운 한 사람의 얘기다.
 
 
 
‘드라이브’는 단순하다. 단순함은 스토리의 간결함과 전달의 명료함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소년을 위해 희생한다. 이 과정은 지리멸렬하고 감상적인 대사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장면장면 미장센과 그 미장센에 방점을 찍어 버리는 배경 음악, 여기에 극도로 절제된 프레임 마법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모든 장면에서 전달 요소는 화면이고, 그 화면은 바라보는 카메라 시선이며, 그 시선은 음악을 통해 관객 마음을 조종한다. 대사는 절제되고 생략되고 지워진다. 사실 과정도 필요 없다. 심지어 이름도 없다. 영화 속 정비소 사장 ‘섀년’이 설명한다. “5~6년 전 어느 날 카센터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직원으로 써달라고 하더라”며 그 남자를 설명할 뿐이다.
 
이 영화 제목이 ‘드라이버’가 아닌 ‘드라이브’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명료화되지 않은, 구체화되지 않은 정체성의 한 남자.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이 영화 속 공간에 떨어진 존재다. 모든 것을 조종하고 이끌어 가는 한 사람의 절대적 감정이 아닌, 그 남자와 또 다른 사람들(관객을 포함한)이 느끼는 흐름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게 이 영화다. 결국 ‘드라이브’는 이런 지점을 통해 보자면 불안정한 현실 속 행복을 꿈꾸는 파랑새에 대한 얘기다. 파랑새는 기다리고 소망하는 누군가에게 다가오는 행운이고 행복이다.
 
영화 '드라이브' 스틸.
 
이런 점은 ‘드라이브’ 명 장면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엘리베이터’ 시퀀스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여주인공 ‘아이린’에게 이 남자는 다양한 의미의 존재다. 남편이고, 애인이고, 사랑이고, 또 판타지이며, 다른 의미의 현실이다. 그와의 만남 그리고 진짜 남편의 출소 이후 이어진 불행 속에서 이제 아이린은 세상과의 대면이 두렵다. 그 두려움을 해소하는 이 남자와의 키스는 ‘믿음’의 대화이며, 이 남자와 아이린 모두에게 ‘파랑새’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단 한 순간이다. 이후 이어진 이 남자의 극단적 폭력은 동승했던 청부살인업자를 짓이기며 ‘히어로’ 장르 원형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감독의 연출 의도를 투사시킨다. 목적을 위해 드러낸 힘과 그 목적이 한 공간에 자리한 상황 속에서 드러난 가공할 폭력성은 그 자체로 폭력이라기 보단 우아함과 황홀함 그리고 궁극적으론 로맨틱한 감정으로까지 이끌어 간다. 이 장면에서 드리워진 조명의 활용성과 음악의 버무림 여기에 이 모든 것을 담은 프레임을 만들어 낸 카메라의 시선은 장르 규칙성으론 설명이 불가능한 ‘이질적인 매혹’을 만들어 낸다.
 
영화 '드라이브' 스틸.
 
무엇보다 이 영화가 장르 영화 마니아들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올 지점은 영화적 시선의 유려한 변화다. 범죄 느와르 장르로 시작된 ‘드라이브’의 시작은 기존의 같은 장르 영화의 ‘그것’과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이후 급격하게 ‘드라이브’는 방향을 틀어 버린다. 편의상 ‘드라이버’로 불리는 이 남자와 아이린 그리고 그의 아들, 세 사람이 만들어 내는 달콤한 멜로는 합일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두 장르의 이종배합을 기묘할 정도로 이뤄낸다. 경계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혀 다른 색깔의 두 장르가 흐름의 끊김을 느낄 수 없이 붙어 버렸다.
 
두 장르의 이런 합일은 사실 영화 중반 이후 드러난 광폭스러울 정도의 폭력 세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숭고한 구원의 메시지까지 전달한다. 앞서 언급한 ‘파랑새’ 동화는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그리는 ‘히어로 원형’의 자기 구원적 메시지로 귀결된다.
 
영화 '드라이브' 스틸.
 
‘드라이브’ 속 ‘드라이버’인 한 남자는 현실에선 누군가의 그림자였다. 그림자로만 살아온 그는 낮과 밤이 다른 인생 속에서 자기 구원을 꿈꿨다. 아이린이란 파랑새를 만났다. 그를 통해 파괴적인 광폭함의 본성을 드러내며 목적을 위한 자기 희생을 선택한다. 현대 장르 영화 속 히어로가 자기 과시적 측면의 희생을 갖고 접근하는 인물의 전형성이라면, ‘드라이브’의 ‘드라이버’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히어로다.
 
영화 '드라이브' 스틸.
 
히어로란 측면에서 이 남자는 결국 아이린과 소년을 구원한 게 아닌 자기 구원을 얻어 낸 피상의 목표를 이룬 뒤 어둠 속 그림자에서 빛 속으로 걸어 나가는 진짜가 된다. 영화 마지막 응징, 그리고 그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한다. 9년 전 이 영화를 만든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감각이 절정의 극한으로 치달았을 것이란 막연한 상상이 지금 그가 이 영화를 넘어서는 또 다른 신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단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9월 3일 재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