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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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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무비게이션)‘페어웰’, 이별을 바라보는 가장 따뜻한 작별

할머니 죽음 앞둔 가족의 가장 완벽한 이별 공식 그리고 ‘거짓말’

2021-01-26 00:00

조회수 : 8,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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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별에 대한 얘기다. 조금 더 정확하게 들어가면 죽음에 대한 얘기일 수 있다. 제목인 페어웰’(farewell) 사전적 의미는 작별이다. ‘이별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헤어짐이다. 하지만 작별은 마침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별보단 마지막을 의미하는 죽음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조금은 좀 모자란 듯하다.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작별이 아닌 이별을 만들어 간다. 주인공은 미국에 이민을 간 중국인 가족. 이 가족들에게 작별은 아마도 끝이 아닌 그 이후다. ‘작별의 한자어 作別’. 지을 작() 그리고 나눌 별(). 이 가족은 각자가 누군가와의 작별이 아닌 이별을 만들고, 그 만듦의 과정을 서로가 나눠 갖는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 내는 감정의 깊이는 크다. 유머도 있다. 코미디를 위한 유머가 아니다. 삶에 대한 관조와 성찰에 대한 유머. 조금 더 나아가면 이들 가족이 미국 사회에 이민을 온 이민자란 사실. 그리고 동양과 서양 문화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주인공 빌리(아콰피나)가 느끼는 죽음이별에 대한 혼동. 결과적으로 죽음이별을 대하는 동양적 사고와 가치관에 대한 서양적 시선의 아이러니가 페어웰을 바라보는 가장 적절한 유머의 시선일 듯하다.
 
 
 
빌리는 이민자 1세대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미국 뉴욕에서 생활한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살고 있지만 절반의 독립이다.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독립해 살지 못하는 빌리. 그런 빌리를 언제나 걱정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혼자 제대로 모든 걸 완벽히 해내고 싶지만 이민 2세대 빌리에게 뉴욕은 자신을 미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로 취급할 뿐이다. 그런 빌리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중국에 사는 할머니와의 전화통화. 그런 할머니가 죽음을 앞두게 됐단다. 모두가 충격이다. 빌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국으로 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빌리에겐 오지 말 것을 권유한다. 빌리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금전적인 이유 등 여러 가지 때문이다. 물론 그것보다 진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할머니 자신이 본인의 죽음을 알길 바라지 않아서다. 의욕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삶의 끈을 놓게 하고 싶지 않기 위해.
 
영화 '페어웰' 스틸. 사진/오드(AUD)
 
할머니는 빌리의 가족 그리고 일본에서 사는 빌리 큰 아버지 가족 모두에게 가장 소중하다. 동양권 문화에서 볼 수 있는 집안 큰 어른으로서의 중심. 그런 할머니를 그냥 떠나 보낼 수는 없다. 할머니 본인을 제외하면 영화 속 모든 사람은 죽음을 안다. ‘작별을 예감한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 본인은 며칠 뒤 이별에 슬퍼할 뿐이다. ‘이별을 만들어 가는 가족들, ‘작별을 앞둔 할머니. 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정반대다. 이게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면서 기묘한 유머를 만들어 낸다.
 
영화 '페어웰' 스틸. 사진/오드(AUD)
 
사실 이게 유머라고 재단해야 할지 모르겠다. 빌리의 혼란 때문이다. 그는 미국에서도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함께 하고 자신 핏줄 근본이 되는 중국에서도 혼란스럽다. 정체성으로서도 감정적으로도 혼란스럽다. 정작 할머니 본인만이 자신 상태를 알지 못하는 이상한 현실. ‘미국이라면 불법이라고 부모에게 대놓고 따지는 빌리. 하지만 그게 미덕이라면 미덕이란다. 중국에선 부모의 죽음을 자식 된 도리에서 알리지 않는단다. 가족들은 그렇게 마지막 효도를 준비하고,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손주의 가짜 결혼식을 만든다. 그 과정이 자못 진지하고 또 괴상망측하며 또 어떤 시각에선 따뜻하고 진솔하기까지 하다. 그 중심에 빌리가 있고, 빌리가 그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과 혼동은 이민자 2세대로서 미국에서 느끼는 그것과 중국에서 그리고 가족 안에서 느끼는 그것의 충돌이 만들어 낸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사실 복잡한 게 아니다. 그저 가족이란 단어 하나일 뿐이다. 그게 페어웰이 전하는 가족이다.
 
영화 '페어웰' 스틸. 사진/오드(AUD)
 
페어웰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먼저 하나는 밝음과 어둠이다. 밝음은 빌리와 그의 가족들이 할머니를 상대로 만들어 가는 거짓 이별이다. 그 밝음의 중심은 할머니의 거짓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결혼식. 첫 만남을 위한 결혼식이 사실은 마지막을 위한 작별의 환송연’. 마치 페어웰이 지닌 주제의 정체성 같다. 당연히 관객이 전달 받는 감정은 결코 슬프고 어둡지만은 않다. 그 안에서도 가족들은 각자의 안부와 이별 그리고 작별을 위한 감정을 교류한다. 누군가와는 오랜만의 반가움이 되고, 또 누군가와는 며칠 뒤 헤어질 이별이 슬플 뿐이다. 이 모든 게 할머니와의 작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행복과 슬픔이 매 순간 교차되는 기묘한 시퀀스를 만들어 낸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단 한 지점을 바라보면서 그 장면에서 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 중심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빌리를 잡아 둔다. 이 장면 자체가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 '페어웰' 스틸. 사진/오드(AUD)
 
그리고 두 번째는 문화적 차이의 혼동일 것이다. 조금 더 들어가보면 가치관 충돌이다. 가족의 죽음. 하지만 그 죽음을 두고 해석을 하는 동양과 서양의 시선은 다르다. 죽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슬프고 어쩔 수 없는 작별이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페어웰이 그걸 말한다. 중국, 즉 동양에선 가족으로서 가장 큰 어른에 대한 예의 또는 당연함이라고 한다. 빌리가 마지막까지 혼란을 겪는 지점이다. 하지만 빌리는 미국 시민권자이면서 미국 사회에 물들어 살아가는 미국인이다. 그의 시선에 가족들이 만들어가는 이별의 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마지막까지 가족들과 충돌하는 이유다. 죽음을 당사자인 자신에게만 지게 하는 짐이 아닌 가족이란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가는 당연함으로 바라보는 동양권 문화 해석이 서양의 시선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석될 지가 궁금한 순간이다.
 
영화 '페어웰' 스틸. 사진/오드(AUD)
 
하지만 사실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하나는 결국 페어웰이 전하는 가족의 의미 안에 모두 들어가 있는 각자의 역할일 뿐이다. ‘페어웰에서 가족이란 의미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를 통해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작은 아들(빌리의 아버지)이 미국 여권을 갖고 있다 한들, 큰 아들이 일본에서 살고 있다고 한들. 그들은 모두 내 아들이고, 내 자식이고 또 내 가족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가족을 바라보는 빌리가 있다.
 
영화 '페어웰' 스틸. 사진/오드(AUD)
 
영화 마지막 빌리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다시 이별한다. 할머니에겐 이별이지만 빌리에겐 작별이다. 그는 다시 중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삶으로 돌아온다. 미국 뉴욕 거리를 걸어가던 빌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살아보니 그렇더라라며 삶의 지혜를 전한 할머니만의 비법이다. 그렇게 빌리는 중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서 살아가야 할 자신의 위치 속에서 세월의 지혜를 받아 들이고 또 그렇게 살아보려 노력한다.
 
영화 '페어웰' 스틸. 사진/오드(AUD)
 
특별할 것 없는 페어웰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동양도 아닌 서양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감성은 너무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작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가 마지막까지 기생충과 함께 경쟁작으로 페어웰을 두고 고심했을 근심의 크기가 너무도 또렷하게 느껴진다. 2 4일 개봉.
 
P.S ‘페어웰은 감독 룰루 왕의 자전적 스토리다. 참고로 영화 속 할머니는 아직도 건강하게 삶을 즐기고 계신다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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