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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아

(단독)"입사하려면 1억 투자해라"…조종사 채용시장에 무슨 일이

2021-01-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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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업계가 큰 타격을 받으면서 조종사 채용 시장이 굳게 닫힌 가운데 일부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조종사 입사 및 교육 조건으로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종사 채용시 항공업계에서 의례 있어온 교육비 자부담 방식이라지만, 기존 베테랑 조종사들조차 일자리를 잃고 떠도는 상황에 신입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비행 스펙'을 쌓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돈을 내고 입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일부 저비용항공사(LCC)와 취업을 원하는 조종사 간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해도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항공산업노동조합연맹, 대한항공노동조합, 아시아나열린조종사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항공산업노동자 고용 안정 쟁취를 위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26일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최근 한 LCC 업체는 조만간 입사 예정인 10명의 신입 조종사를 채용하면서 약속이행 보증보험 방식 또는 만기 18개월의 전환사채(CB) 발행으로 1억2500만원을 투자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부기장 승격 자격을 취득하게 된 조종사의 이직 등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마련한 대책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행이라고 하지만 이같은 방식의 채용은 일반 기업 채용 시장에서는 흔치 않는 일이다. 통상 조종사 면장을 소지한 조종사들이 정식 부기장이 되기 위해서는 1000시간의 운항 시간을 채워야만 국토교통부가 인정하는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교육 이수가 필수적인만큼 조종사들도 교육비를 자비로 선납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신입 조종사에게 투자비를 받았다는 것은 과도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기장이 되기까지 필요한 훈련비를 회사에서 대납하고 몇 년간 근무조건을 달아 묶어두는 건 대한항공이든 아시아나 항공이든 어디나 마찬가지"라면서도 "다만 조종사 채용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말이 좋아 투자지 한 시간의 비행 경력이 아쉬운 신입 조종사 입장에서는 사측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교사 임용을 꿈꾸는 기간제 교사들이 사립학교에 일정 수준의 기부금을 내고 정교사로 임용되는 것과 같은 비슷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사측은 투자 제안과 채용을 연계했다는 의혹에 대해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만기 도래시 이자와 원금을 받아갈 수 있도록 했고 이를 주식으로 전환을 할 수 있는 옵션도 제시하는 등 투자 제안 과정에서 강요나 협박 등은 전혀 없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신규 입사자 가운데 발행예정인 CB에 대해 참여한 참가자도 있지만, 전원이 사측의 투자 제안에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 채용에 불이익은 없음을 안내했고 투자에 대한 원금 손실 등 위험은 투자자가 부담하는 부분을 명시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운항 승무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교관 인건비, 시설운영비, 시뮬레이터 이착륙 훈련 등에 상당한 비용이 필요한 만큼 훈련생에 대해 교육비를 스스로 부담하도록 했고, 추후 발생하는 훈련 비용에 대한 실비만을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또 훈련이 끝난 후 국토교통부로부터 자격을 취득한 조종사에 대해서는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이라 밝혔다. 
 
이같은 채용 방식이 통하는 것은 조종사 취업 시장이 과열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정식 조종사로 채용될 경우 억대 연봉이 보장된다고 알려진 만큼 지원자들은 2~3년간 최소 8000만원에서 2억원이 넘는 비용을 투자해 파일럿 자격증을 취득한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항공사 지원시 최소 자격인 사업용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지난 2011년(379명)까지 300명대를 유지하다가 해마다 증가해 2019년(1688명)으로 4.5배 늘었다. 자격증 취득자가 늘어난 것에 비해 항공사 채용 규모가 크게 늘지 않은 데다가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 영향에 조종사 시장이 더욱 위축되면서 적체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채용되지 못한 인력이 약 4000~5000명에 달하자 상당한 비용을 감내하면서까지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박상모 조종사노조연맹 사무처장(진에어노조 위원장)은 "각 항공사의 항공기 대수가 현 수준을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 코로나 이후 연간 150~200명 사이의 신규채용이 이루어 질 것으로 보이나 한해 공군 전역인원이 100명 내외인 것을 감안할 때 민간항공학교 출신의 조종사 채용은 전 항공사를 통틀어 연간 50~100여명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봤다. 
 
안영태 극동대 항공운항학과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당분간 채용 시장에서 조종사들은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면서 "동일 기종을 타더라도 해당 항공사에만 해당되는 절차와 과정을 습득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항공사가 부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를 교육생에게 전가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이자 조종사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할 수 있다. 애초에 시도를 못하게끔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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