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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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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양산 구조 돌아보게 한 변호사시험

학교에선 졸업경쟁, 변시 합격 50%...오탈자 문제 다시 수면 위로

2021-01-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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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변호사시험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사법시험 폐지 후 법조인 양성의 유일한 길목이 된 이 시험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이토록 성토가 이어지는 걸까요.
 
25일 낮 헌법재판소에는 법조문턱 낮추기 실천연합(법실련)과 10회 변호사시험 응시자들이 들어섰습니다. 이들이 헌재 문턱을 밟은 이유는 부실운영을 지적받는 올해 변시를 두고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입니다.
 
법실련은 변호사시험 전원 만점처리와 법전 밑줄긋기 무효 확인을 구하는 행정심판과 집행정지,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관리위)의 유출 문제 전원 만점 처리에 대한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법무부 상대로는 국가배상청구 준비와 대책 마련 요구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인 문제점은 시험문제 유출과 시험용 법전 밑줄긋기 허용 형평성, 코로나19 대응 미숙 등입니다.
 
우선 법무부는 이번에 출제된 행정법 기록형 문제가 연세대 로스쿨에서 유출된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에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는 해당 문제를 전원 만점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를 미리 알고 푼 학생이 다른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부당한 이득을 얻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백지 답안을 낸 학생이 부당하게 점수를 얻어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법전 밑줄치기 허용의 경우 시험 첫 이틀 동안 일부 고사장에서 허용된 점이 문제 됐습니다. 법무부는 이전 시험까지 시험용 법전 배부 후 풀이가 끝나면 수거한 뒤 무작위로 다시 나눠줘 부정행위를 막았습니다. 이번 시험에선 코로나19 대책으로 배부한 법전을 수거하지 않고 이름을 적은 뒤 책상 위에 보관하는 식으로 방침을 바꿨습니다. 문제는 밑줄 허용 공지가 시험 중간인 7일 나왔다는 점입니다. 응시생들은 현행법상 변호사시험 중요 공지는 시험 5일 전에 해야 함에도 법무부가 이를 어겼다고 지적합니다.
 
법무부는 밑줄 긋기가 준수사항일 뿐이라고 했지만, 응시자들은 그간 준수사항을 어길 경우 답안이 0점 처리되거나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는 방송이 나왔다고 반박합니다.
 
그런데 꼭 소송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응시생은 시험 기회가 제한돼 불안합니다. 특히 '오탈자' 문제가 가장 큽니다.
 
오탈자는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주어진 5번의 기회 안에 변호사시험에 합격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탈제로 불리는 이 제도는 과거 사법고시 폐단으로 지적된 고시 낭인을 없애기 위해 도입됐지만, 질병이나 사고 등 개인의 내밀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5년 제한을 뒀다며 비판 받아왔습니다. 이번 소송에 합류한 어느 학생도 오탈자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는 지병이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탓에 이번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시험이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와 함께 문제 된 구조가 합격률 제한입니다. 법무부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는 매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숫자를 결정합니다. 근거는 기존 시험 합격자 수와 법조인 수급 현황, 인구와 경제규모 변화 등 입니다. 
 
그런데 합격자 수는 전체 응시생의 절반 수준입니다. 지난해 9회 시험 합격자 수는 1768명으로 응시자(3316명) 대비 53.32%에 불과합니다. 8회도 응시자 3330명 중 1691명 합격으로 비슷합니다.
 
법실련 측은 5년 내 5회 응시 횟수 제한과 응시생 절반만 합격시키는 현행 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이번 사태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경수 법실련 공동대표는 "로스쿨 3년 다니고 졸업하자마자 시험 본 사람이 약 1500명인데 그 중 합격자는 1000명 정도에 불과하다"며 "그렇게 되면 입학 정원 대비 졸업 후 바로 합격하는 사람이 약 55%밖에 안 된다. 이러니 너무 학교 자체가 변호사시험 위주로만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실 변호사 자격 여부를 인원 수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시험을 봐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됐으면 모두 통과시키든지, 수준이 안 되면 모두 떨어뜨리든지 해야 (로스쿨 취지에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공동대표는 "사흘 굶어 담 안 넘는 사람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도둑질도 나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도록 한 사회도 나쁘다는 의미"라며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다. 로스쿨이 내 제자를 한 명이라도 더 합격시켜야 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했습니다.
 
양필구 법실련 사무총장도 "오탈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 문제가 지속될 것이고, 합격률이 통제돼도 이런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 사무총장은 "실제 7회 변시 이후로 법무부가 로스쿨별 합격률을 공개하고 있는데, 각 학교 졸업사정제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 해 로스쿨에 2000명 입학하는데 1800명 정도가 졸업해 200명 정도가 남는다"며 "로스쿨 졸업을 못하고 적채 된 인원만 1400명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올해부터 졸업시험 경쟁률이 2대1을 돌파한다"며 "그러면 이 2대1 (졸업시험을) 뚫고 나온 사람이 또 (변시에서) 2대1을 붙여야 하기 때문에 연세대 공법 문제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두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 안 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로스쿨 안에서는 졸업 경쟁, 나와서는 시험 경쟁 이중고가 기다리니 문제 유출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선배 변호사들은 새내기 숫자를 줄이고 싶어합니다. 이번 51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후보 공약에는 '로스쿨 입학 정원과 변시 합격자 감소'가 등장했습니다. 유력 후보 중 한 사람도 신규 변호사 감축을 위해 관련 TF를 운영한다는 방침입니다. 후보들은 모두 직역 수호와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있습니다. 변호사 시험이 자아실현과 취업 관문인 이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현상입니다.
 
제10회 변호사시험 응시생과 볍조문턱 낮추기 실천연대 회원들이 25일 오후 헌법재판소 앞에서 변호사시험 문제 전원 만점처리 헌법소원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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