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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손실 감수하겠다" 각서 쓰면 초보자도 고위험상품 가입…금소법 사각지대 여전

당국, 불원확인서-부적합확인서 활용 허용…"투자자 선택권 보장 차원"…당국 "남발 사례 점검 강화"

2021-04-0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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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우연수 기자] #.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하기 위해 증권사 영업점을 방문한 A씨는 투자성향 테스트를 받은 결과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ELS에 가입할 수 없는 '안정추구형'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A씨는 '부적합확인서'라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ELS에 가입할 수 있었다. 부적합확인서란 투자자가 본인의 투자성향과 부적합한 상품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상품에 가입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서류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이후 금융상품 판매 절차가 강화됐지만 이처럼 투자자들은 본인의 투자성향 관계없이 고위험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투자자의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부적합확인서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원금손실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각서 성격의 서류를 남발하는 사례를 차단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투자자보호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투자업권의 표준투자권유준칙(준칙)이 이르면 이번주 마련된다. 지난 25일 시행된 금소법에 대한 후속조치다. 표준투자권유준칙은 투자자들에게 상품을 판매할 때 증권사가 지켜야 할 절차 등을 규정한 것이다. 이 준칙에 따라 금융사 직원은 고객의 투자경험이나 재산상황 등에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게 된다.
 
당국과 금융투자협회는 원금손실 상품 가입과 관련된 '불원확인서'와 '부적합확인서'를 현장 일선에서 기존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불원확인서의 경우 금융사가 고위험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악용한 사례가 있었던 만큼 금소법 논의 때부터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투자자가 금융사의 권유를 원하지 않을 때 작성하는 '투자권유 불원확인서'도 마찬가지다. 불원확인서와 부적합확인서에는 △원금 손실 가능성 △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못받을 수 있다는 점 △직원의 권유 없이 가입이 진행되는 점 △추후 분쟁시 불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객에 고지하고 있다.
 
고객의 투자성향 보다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팔면서도 이들 서류에 고객 서명만 받아두면 금융사로서는 사실상 면죄부가 됐다. 이러한 행위는 고객의 투자성향에 맞는 상품만을 권유하도록 하는 '적합성 원칙'에도 위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이 불원확인서 등을 허용한 것은 투자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어떤 상품이 투자성향 등에 부적합하다면 고객에게 인지시켜야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고객이 그 상품을 가입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불원확인서라는 명칭은 '투자희망확인서'로 바뀐다.
 
금융당국은 금융상품 관련 서류의 남용 사례를 막기 위해 활용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가 공개한 금소법 세부 지침에 따르면 고객으로부터 불원확인서나 부적합확인서를 받은 후에 고객 성향에 맞지 않는 고위험 상품을 권유해선 안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소법 시행 이후 금융상품 상담과 판매 과정은 녹취 등을 통해 기록된다"며 "고위험 상품을 부당하게 권유하지 않는지 철저히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투자자 보호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소법 시행으로 판매 절차에 대한 규정은 강화됐지만 불법과 합법의 기준이 모호하다. 예컨대 금융사 직원이 고위험 상품을 먼저 '권유'하는 행위는 불법이지만, 고객이 원할 경우 상품 목록을 '제시'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금융사 직원이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상품 가입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더라도 투자 경험이 적은 초보 투자자들이 고위험 상품에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장치가 존재하는 셈이다.
 
우연수 기자 coinciden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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