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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진

중대재해법 시행 1년 남았는데…노동 현장서 쓰러지는 청년들

23세 청년, 평택항서 작업하다 무거운 철판에 깔려

2021-05-10 14:44

조회수 : 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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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또 한 명의 청년 노동자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던 고 이선호씨(23세)가 개방형 컨테이너 내부 뒷정리를 하던 중 300kg 무게의 철판에 깔려 숨졌다. 이선호씨 사망사고는 매년 악순환의 고리가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현장 안전지침만 제대로 지켜졌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던 사고인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균 사고' 이어 또 반복…'안전관리 미흡' 공통점
 
지난 2018년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김용균 씨 사고와 유사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씨는 발전소 정규직이 2인 1조로 해오던 업무를 홀로 진행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숨졌다.
 
지난 2019년 4월에는 수원의 한 공사장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소속의 26살 김태규씨가 화물용 승강기에서 추락해, 2017년 11월에는 제주도 음료 공장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실습생 이민호군이 컨베이어에 깔려 사망했다. 2016년 5월에는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19살 김모군이 열차에 치여 숨졌다.
 
이선호씨 역시 사건 당일 처음으로 해당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고 안전 장비 역시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게차와 같은 중장비가 사용될 때 있어야 하는 작업 지휘자나, 작업 유도자도 없었다.
 
이 사건 모두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경우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20년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2062명, 2019년에는 202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에서 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지난 24년간 21회 1위를 기록했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1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내년 1월 ‘김용균법’ 시행해도 실효성 미지수
 
노동계는 이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안전수칙 준수가 소홀한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의하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재범률은 93%에 달한다. 안전 수칙을 무시한 채 노동자를 위험에 빠트린 기업 10곳 중 9곳이 똑같은 형태의 불법 행위를 반복해서 저지르는 셈이다.
 
안전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에 가깝다. 지난 2018~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1065명 중 절반가량인 49.5%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평균 벌금액은 458만원 이었다. 실형을 선고받은 이도 전체 피고인 1065명 중 21명으로 1.9%에 불과했다.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지만 안전규정 미준수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내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당초 노동계가 요구한 처벌 수위보다 많이 후퇴했기 때문이다. 시행될 법은 사망사고를 낼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징역 1년 이상 또는 벌금 10억원 이하'의 처벌이 내려진다.
 
이마저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에 3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지며,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지난 2019년에만 국내 제조업 산재 사망자의 20.4%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할 정도로 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고 이선호씨 산재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사망자)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비용 절감이라는 논리 아래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채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죽어 나가고 있다"며 "구의역 고 김군, 태안화력 발전 고 김용균 건설노동자 등에 이어 이선호군까지, 우리는 꽃다운 젊음의 죽음을 왜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가"라고 했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하청노동자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라면서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기업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해 왔다면 기업이 소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정부가 산재 사고와 관련한 '재해조사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년유니온 이채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16일 오전 30여개 경제단체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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