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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종전선언, 아무 것도 아닌 모든 것

2021-09-24 16:56

조회수 :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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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킹덤 오브 헤븐
 
2005년 상영된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의 한 장면이다. 예루살렘에 대한 기독교 기사 이벨린의 발리앙과 이슬람교의 지도자 살라흐 앗 딘의 대화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공통 성지다. 하느님(하나님), 알라, 야훼(여호와)는 같은 존재지만, 인간들은 그를 자신들이 원하는 이름으로 부르며 수천년간 성지를 피로 물들였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았던 예루살렘은 종교적 의미가 붙으며 성지가 됐고, 사람의 욕망과 에고가 충돌하면서 전쟁터가 된 것이다.   
 
2. 종전선언은 어떤 것이죠?
 
전쟁 중인 국가들이 평화협정(종전협정)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다. 즉 종전의 완성이 아닌 시작을 위한 정치행위다. 설령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평화협상 과정에서 비핵화와 제재완화 등을 이유로 종전협정이 실패할 가능성은 있다.
 
6.25 전쟁의 경우 정전협정 당사자는 유엔군(총사령관 미국 마크 클라크),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국 인민지원군(사령원 펑더화이)였다. 남한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반대로 정전협정에는 불참했다. 중국도 공식 참전은 아닌 '의용군' 형식으로 개입했다.
 
그렇기에 엄밀히 따져 종전선언 당사자는 유엔군(주한미군 사령관이 겸직)과 북한이다. 여기에 실질적 당사국인 우리가 포함되고, 범위를 넓히면 중국까지 포함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미', '남북미중'으로 종전선언 당사자를 규정한 이유다.
 
3. 아무것도 아닌 종전선언
 
앞서 언급했지만 종전선언은 종전협상 시작을 위한 상징적이며 정치적 행위다. 그렇기에 어느 당사자 일방의 주장에 따라 언제든지 백지화 시킬 수 있다.
 
문 대통령도 "종전선언은 미군 철수나 한·미 동맹과 무관하며, 평화협상 입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종의 정치적 선언으로, 법적 지위는 달라지는 것이 없고 정전협정에 의해 이뤄지는 관계는 그대로 지속된다"고 했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부상의 "종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남아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발언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4. 모든 것인 종전선언
 
그럼에도 종전선언은 중요하다. 종전선언을 계기로 적대적 관계를 끝내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는 당사자들 의지를 결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장기간 지속되어 오고 있는 조선반도(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독일의 실존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이는 언어가 우리의 의식에 되반영된다는 의미다종전선언을 통해 남북미가 서로를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공존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종전선언은 모든 것의 시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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