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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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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장의 시선)참을 수 없는 이준석의 가벼움

비난에서 존중으로, 하루 만에 입장 뒤집어… 솔직함 사라지고 정치기술로 승부

2021-12-05 06:00

조회수 : 9,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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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리도 가벼울 수 있단 말인가. 치기 어린 처신에 그가 주장했던 모든 것이 명분을 잃게 됐다. 이젠 그가 무엇을 말해도 진정성은 물론 사실관계조차 의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준석 대표를 통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본다.
 
거칠 것 없던 당당함과 솔직함은 좌충우돌 불확실성의 리더십이 됐고, 기성 정치권을 향한 논리정연했던 청년의 외침은 자기이해만 극대화하는 노회한 정치꾼의 묘수로 변질됐다. 결국 이준석 현상은 '돌풍'이 아닌 '신기루'였다. 청년들이 사실을 직시하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를 마지막으로 대외일정을 무기한 취소하며 종적을 감췄던 그가 부산, 순천, 여수를 거쳐 제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숨겨뒀던 작심 비난들도 쏟아냈다. 대상은 분명 윤석열 후보와 그 주변이었다. 그의 의도대로 움직였던 우리 언론은 한낱 도구로 활용될 뿐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일 JTBC와 이원생중계로 선대위 구성 관련 내홍 및 잠적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JTBC 화면 캡처
 
2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몇몇 기자들 앞에 선 그는 "후보가 배석한 자리에서 '이준석이 홍보비를 해먹으려고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인사가 누군지 아실 것"이라며 윤 후보에게 해당 인사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대표는 "후보가 어떤 것도 상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저희 간 이견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후보 선출 이후 저는 당무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무우선권을 내세워 윤 후보가 전횡을 일삼는다는 얘기로, 자신과는 일절 상의도 없었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상호 간 존중이 없고 상의가 없는데, 당연히 이견도 없었다.
 
그러면서 "제가 뭘 요구하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다고 보시는 것도 저에 대해서는 굉장히 심각한 모욕적 인식"이라고 언급, 자신 주장에 대한 정당성 및 명분 확보에도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언급의 주체는 당대표인 이준석이었으며, 객체는 당의 대선후보 윤석열이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적어도 입법부의 일원이고 우리 당의 국회의원이고, 우리 당에 대한 진지한 걱정이 있는 분들은 사람을 위해 충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윤 후보가 검사 시절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도 고스란히 돌려줬다. 
 
저녁에는 공세 수위를 더욱 높였다. 이 대표는 JTBC와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윤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당시 추미애 법무부장관에 했던 말을 상기시키며 "그때 했던 말의 울림이 지금의 후보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저도 똑같이 말하겠다. 당대표는 적어도 대통령후보 부하가 아니다"고 했다.
 
이어 "(대선후보와 당대표는)협력해야 하는 관계이고, 대통령후보 또는 대통령이 당을 수직적 질서로 관리하는 모습이 관례였다면 그것부터 깨는 게 신선한 시작"이라고 자신을 대등한 수평적 관계로 봐 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팔짱을 낀 채 불편한 심경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다음날 당은 발칵 뒤집혔고, 논란 끝에 윤 후보가 이 대표가 있는 울산으로 향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과의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이준석 대표마저 내홍의 중심에 서자, '이대로는 대선 필패'라는 위기감이 자존심 강한 윤 후보를 움직이게 했다. 김기현 원내대표가 이 대표를 먼저 만나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사전작업도 거쳤다. 전여옥 전 의원 말처럼 '백기투항'이었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 앞에 섰다. 먼저 그간 선대위 합류를 고사했던 김종인 전 위원장이 입장을 뒤집고 총괄선대위원장 직을 수락했다고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윤 후보와 이 대표가 다시 손을 잡기로 한 순간이었다. 누가 이 대표의 파업 배후에서 훈수를 뒀는지 이해됐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까지도 "만날 일 없다"던 강경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했다. 그는 "윤 후보와는 어떤 이견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단 한 번도 서로를 존중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이견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탓을 이른바 복수의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으로 돌렸다. 그들의 입지를 좁히는 동시에 이번 기회에 당대표가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계획된 심산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당 대표가 4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일대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합동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4일에는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을 찾아 청년세대로부터 환호를 받으며 자신의 입지를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사진 찍고 싶으면 말씀해주세요'라고 적힌 빨간 색 후드티를 차려입은 윤 후보와 이 대표는 몰려드는 인파에 파묻혔다. 인파들 속에서 윤 후보에게 생일 케이크까지 전달하는 깜짝 이벤트도 연출했다.
 
앞서 윤 후보로부터는 "한국정치 백년사에서 최초로 나온 30대 당대표와 함께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 것이 후보로서 큰 행운"이라는 말과 함께 "선거운동 기획에 대해 이 대표에게 전권을 드리고, 기획하고 결정하신 부분은 제가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항복선언을 이끌어냈다.
 
이 대표가 벼랑끝 전술로 윤 후보와의 권력투쟁에서는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불과 하루도 안돼 입장을 뒤집는 등 신뢰에는 분명 금이 갔다. 윤 후보가 지금은 웃지만 호되게 당한 그 속마저 웃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청년세대 표심마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점은 극히 우려스럽다.
 
나흘간 잠행 중이었던 이준석 대표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기자에게 이모티콘을 보낸 내용
 
솔직하게 '내가 당대표다. 나를 인정하라'고 말하면 됐을 것을, 노회한 정치 프로에게 배운 대로 기술로만 압박한 것은 오히려 적을 더 만드는, 두고두고 후회할 지점일 수 있다. 지금은 환호하지만 이 대표의 본질에 직면한 청년세대가 그를 향해 어떤 말을 던질지도 자못 궁금하다. 명분은 잃고 실리는 챙긴 헛장사가 될 공산이 크다.   
 
이 대표의 제주행 소식에 서울에서 급파됐던 기자들이 칼바람에 떨며 그를 찾아 헤멨지만 조롱하는 듯한 이모티콘으로 답한 것도 청년세대를 향하는 그의 가벼운 처사다. 언론을 자신의 장사 용도로 여기는 그의 그릇된 행태에 더는 놀아줄 마음이 없다.
 
정치부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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