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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시론)대통령 비속어의 득실

2022-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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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도 화가 나면 욕을 내뱉었다는 내용이 역사실록에 나온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정찬손에게 "이 오활한 놈아. 너는 말만 앞세우고 뜻은 엉뚱한 데 있는 놈이구나" 하고 질타했고 종종 "이 감옥에 처넣을 놈아!"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정조도 노론의 거두 심환지에게 "입에 젖비린내 나고 사람 꼴도 갖추지 못한 놈 같으니라고…!"라는 욕설을 하기도 했다. 최근 비속어 논란에 휘말린 윤석열 대통령을 위대한 세종이나 정조에 비교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누구나 순간적인 실수로 비속어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후유증과 득실을 따져보고자 한다. 7일째 계속되고 있는 이 비속어 공방으로 인해 윤 대통령과 여야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우선 윤 대통령의 비속어 공방은 이미 엎질러져서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흙탕물과도 같은 사안이 되고 말았다. 미국 현지시각으로 지난 21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확대돼온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논란으로 인해 윤 대통령은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에게 망신당하고 야당에 두들겨 맞고 언론에 질타당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 대통령이 과거 사석에서 자신에게 '이XX, 저XX'라고 욕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윤 대통령이 뉴욕에서도 비속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레 짐작할지 모른다. 뒤늦게 비속어가 아닌 것으로 판명난들 어쩌겠는가? 윤 대통령은 이미 충분히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윤 대통령이 원인 제공을 했으니 십자포화를 감수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영화 '친구' 속의 대화처럼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호재를 잡은 민주당으로서는 공격을 멈출 리 없고, 톡톡히 효과를 보았다. 
 
이 과정에서 아쉬운 것은 여권의 위기관리 능력이다. 윤 대통령과 참모들은 일찌감치 뉴욕 현장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빠르게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했거나, 반대로 확실하게 부인하고 대응했거나 둘 중 하나를 택했어야 했다. 1주일이나 지나서야 MBC와 진실공방을 벌이는 것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과거 문재인정부 시절의 조국 사태도 1년 넘게 끌었고, 부동산 정책도 28번이나 실패했는데도 질질 끌다가 국민들의 원상을 사고 정권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위기관리의 핵심은 신속성과 과감성이다. 어렵고 복잡한 상황일수록 빠르고 과감하게 대처하는 게 최선이다. 역대 대통령의 사례를 보면, 사건사고 자체보다 이후의 수습 즉 위기 관리 체계가 훨씬 더 중요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민주당의 태도이다. 민주당은 '대박'이라고 할 만큼 충분히 득점 효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27일에는 당내에서조차 우려가 나오는 박진 외교부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의 희망 대로 만에 하나 윤 대통령의 비속어가 사실로 드러나 '외교 참사'가 벌어진다면, 민주당은 외교 참사를 일으킨 1등 공신이 되는 건가? 민주당이 계속 '비속어 공세'를 강화하면 할수록 열성 지지층은 환호할지 모르지만, 반대층은 더 똘똘 뭉치고 중도층은 이탈할 개연성이 높다. 특히, 지루한 정치공세를 싫어하는 중도층의 속성을 늘 염두에 두기 바란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초부터 막말 논란으로 바람잘 날이 없었고, 이재명 후보도 '형수 욕설' 논란으로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망가지고 무너지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장기간 30% 안팎을 맴돌고 있는데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좀체 오르지 않고 심지어 국민의힘보다 더 낮은 이유를 깨닫기 바란다. 
 
이번에 새삼 부러운 것은 미국의 태도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미국 국회의원들이 화가 날법도 한데도 '노코멘트'로 일관하며 "한미 양국은 영원한 우방"이라는 메시지를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바이든이 실수로 기자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던 사고도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에게 새삼 놀란 것은 그들도 비속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신하들의 무례함을 너그럽게 받아넘겼다는 사실이었다. 두 왕은 쓴소리를 쏟아내는 신하들을 오랫동안 중용했고, 신하들은 감히 왕 앞에서 "제 말을 안 들으시니 실망입니다"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기도 했다고 한다. 이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그리고 민주당은 세종대왕과 정조대왕, 그리고 미국 대통령의 문화를 차제에 눈여겨 살펴보기 바란다. 정치의 처음도 끝도 말이고, 민심의 처음과 끝도 말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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