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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원

싸움의 기술

2023-03-1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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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5일 오전 국회 민주당 대표회의실을 찾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면담 전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자리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윤혜원 기자] “싸움에는 두 부류가 있다”라고 샤츠 슈나이더는 말합니다. 샤츠는 미국의 정치학자인데요. 싸움은 이에 가담하는 사람과 이를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으로 구분된다는 의미입니다. 후자의 경우 구경꾼이라 칭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구경꾼 이론’이 샤츠가 짚으려던 핵심이었습니다. 요컨대 정치란 싸우는 일이고, 이 싸움의 결과를 결정하는 자는 구경꾼이라는 얘기입니다.
 
왜 구경꾼이 싸움의 결과를 좌우할까요. 샤츠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대개의 싸움에는 싸우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구경꾼은 중립적이지 않다. 싸움을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레 어느 한 편을 응원하게 된다는 설명인데요. 이런 싸움의 속성이 정치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샤츠의 통찰은 요즘의 정치 상황에 적합하다는 점에서 더 유의미합니다. 한국은 대의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정치가 여러 현안을 두고 논쟁하며 합의에 이르는 공적인 장이라고 보면, 싸움꾼은 정치인이 될 수 있겠죠. 정치인은 싸움의 결과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구경꾼을 끌어모아야 합니다. 자신을 응원해줄 시민들이죠. 응원의 양상은 투표부터 정당 가입, 후원금 기부 등이 될 수 있겠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갈등이 의회에 모여 정치인들이 이를 두고 다투고, 이런 ‘대리전’을 지켜보는 시민들이 좀 더 납득되는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는 정치인에 지지를 표하는 것. 샤츠는 이런 과정이 바람직한 대의 민주주의 모델이라고 봤습니다. 그렇기에 싸움꾼인 정치인들이 뭘 두고 치고받는지가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했죠.
 
샤츠의 염원이 한국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여야를 막론한 싸움의 주제는 계파입니다. 국민의힘은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민주당은 ‘친명(친이재명)’과 ‘비명(비이재명)’을 각각 놓고 충돌하고 있습니다. 권력 집중 형태가 단극(unipolar)인지, 양극(bipolar)인지, 다극(multipolar)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누가 더 많은 영향력을 갖는지, 주도권을 쥐는지를 두고 여야가 내부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이에 시민들의 일상은 정치와 괴리되고 있습니다. 어제오늘 일만은 아닙니다. 정치 무관심과 혐오가 시민들 사이에 파다해졌다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가 됐죠. 우리 정치가 택한 싸움의 무대가 시민들이 바라던 무대와 오래도록 달랐던 결과이기도 합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상견례를 갖고 한목소리로 민생을 외쳤습니다. 이 두 지도자가 ‘계파에 매몰된 갈등 지형’이라는 고질적 관행을 끊고 정치의 본질을 되살린다면, 한국 정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은 대중의 권력을 사소한 문제들에 사용함으로써 이를 낭비하는 것이다.” 샤츠의 단언이 오늘날 한국 정치를 겨냥한 것처럼 생생합니다.
 
윤혜원 기자 hwy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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