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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bora11@etomato.com

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불편한(?) 소풍

2023-03-29 14:48

조회수 : 5,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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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실외 공기질을 체크했습니다. '미세먼지 보통' 이 뜨네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동네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햇볕은 따사로웠는데, 아직 겨울 공기가 남아있는지 좀 쌀쌀긴했어요. 싹이 움트는 나뭇가지를 한참동안 들여다봤습니다. 정처없이 걷다보니 공원 한쪽 구석 꽃밭 앞에 줄지어 있는 테이블석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30분 정도 앉아있었을까요. 김밥이나 커피, 컵라면을 사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었습니다. 뭐라도 먹으며 피크닉 분위기를 내고 싶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미리 해둔 밥에 간단한 반찬을 담은 도시락을 싸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분 거리 집에서 겉옷도 하나 더 챙기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꼬마들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슨 반찬을 싸가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주중에 만들어두었던 햄볶음밥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 먹을 용도로 볶음밥을 도시락에 담았습니다. 쌀밥과 나물반찬 두어가지도요. 김치냉장고 한켠에서 홀대받았던 어묵도 살짝 구워 도시락 한켠에 넣었습니다. 물통도 챙겼습니다. 에코백에 도시락과 물통, 숟가락집을 넣고 쟁여두었던 과자 간식도 주섬주섬 넣었습니다. 
 
20여분 뒤 다시 공원 자리로 돌아와 3단 도시락을 열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꼭 소풍 온 기분이었습니다. 하얀 쌀밥을 오물오물 씹고 있노라니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쌀의 깊은 단맛이 느껴졌습니다. 
 
가만…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컵라면이나, 빵을 사오거나 혹은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오면 편리했을 것을 왜 집으로 돌아가서 도시락을 싸오는 유난을 떨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공원 근처 편의점에서 물도 사왔으면 훨씬 편리했을텐데요.
 
돈이면 되지 않은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만큼은 그런 인식을 조금 늦게 심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즉각적인 욕망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소비를 생활화하기보다 불편하더라도 물건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생활습관을 가졌으면 하거든요. 일회용품의 사용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물론 귀찮을때도 있지요. 집에서 무겁게 물통에 물을 담아와 들고 다니지 않아도 단 돈 몇 백원이면 필요할 때 바로 물을 사먹을 수 있잖아요. 6년째 갖고 다니는 500ml 용량의 물통은 어느새 우리 가족의 외출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손때 묻은 회색투명 물통이 이제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들도 외출할 때면 '물 담아가자' 라고 말하곤합니다.
 
조금 불편한 소풍은 여력이 닿는 한 계속 해보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생활습관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만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부모로서 혹은 먼저 세상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어른으로서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난 일요일 동네 공원에서 '봄'을 즐겼습니다.
  • 이보라

정확히, 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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