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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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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왜 '컴퓨터'가 아닌가

2023-04-27 13:50

조회수 : 5,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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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상도 화면, 어두울 때 빛을 내는 키보드, 트랙패드를 쓸어올리는 멀티태스킹, '야수의 심장' 애플 M1칩. 맥북이 아니라 제가 쓰는 아이패드 프로 이야기입니다.
 
아이패드의 미래는 언제나 화두입니다. 저는 2021년 팀 쿡 애플 CEO가 맥북에 있던 M1칩을 빼 아이패드 프로에 심는 소개 영상을 본 뒤, 아이패드와 맥북의 통합은 없을거라는 확신이 강해졌습니다. 맥북은 더 막강한 맥OS 노트북으로, 아이패드는 아이패드OS와 함께 '강력한 도화지'로 나아간다는 선언으로 보였습니다.
 
아이패드는 맥북과 달리 화면을 누르는 게 사용자 경험의 핵심입니다. 앞으로 아이패드는 태블릿의 본질을 지키면서 어떻게 더 강력한 도구로 거듭나게 될까요.
 
매직 키보드와 애플 M1칩이 탑재된 아이패드 프로. (사진=이범종 기자)
 
그 실마리는 광고입니다. 본래 아이패드는 생산성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2010년 첫 아이패드 발표 당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소파에 앉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콘텐츠 소비와 맥 중심 생산성을 뒷받침하는 정도였지요.
 
이후 전세계 앱 개발자와 사용자들이 '디지털 도화지' 아이패드의 무궁한 가능성을 연구했습니다. 애플 역시 애플 실리콘 성능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애플펜슬도 만들었습니다. 2019년엔 아이패드 전용 운영체제 '아이패드OS'를 내놨습니다. 이듬해엔 그 유명한 아이패드용 '매직 키보드'를 출시했습니다.
 
그 사이 애플은 아이패드 프로는 컴퓨터가 아니라고 선언해왔습니다. 2017년 아이패드 광고를 돌아보죠. 학생 한 명이 아이패드로 페이스타임 영상 통화를 캡처해 애플펜슬로 메시지를 적어 보내고, 숙제하다 발견한 사마귀를 사진 찍고, 만화책 읽고, 집 앞마당에 엎드려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웃 아주머니가 학생을 향해 "컴퓨터로 뭐 하니?"라고 묻자 학생은 대답합니다. "컴퓨터가 뭐예요?"
 
매직 키보드를 출시한 2020년엔 한 술 더 떠, 컴퓨터 사용법 광고를 냈습니다. 성우가 컴퓨터 사용 시 주의사항을 당부하는데, 화면 속 사람들은 정 반대로 움직입니다. 컴퓨터 앞에 똑바로 앉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아이패드를 매직 키보드에서 떼어내 눕습니다.
 
컴퓨터는 깨끗한 작업 환경에서 소중히 다뤄야 하지만, 화가가 애플펜슬로 아이패드 화면을 거칠게 문지르고 무심히 가방에 툭 넣어버립니다.
 
인터넷 사용을 위해 와이파이를 써야 하지만, 모험가는 셀룰러 모델로 오지 속 텐트에서 영상통화 합니다.
 
아이들 손에 닿지 않게 해야 하는데, 부모는 아기가 애플펜슬로 화면에 낙서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봅니다. 애플이 정말 아이패드를 컴퓨터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아이패드가 컴퓨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는 자랑이지요.
 
애플은 강한 부정으로 모바일 시대를 이끌어왔습니다. 기존 MP3 플레이어의 단점을 강하게 부정해 아이팟을 만들었고, 스마트하지 않은데다 필요 없는 순간에도 물리자판이 붙어있는 스마트폰을 부정해 아이폰을 만들었습니다. 각 제품은 강한 부정으로 고유성을 지켰습니다. 아이패드 역시 전통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에 맥북이 될 수 없지요.
 
특히 맥북의 사용자 경험을 가져온 트랙패드가 역설적으로 둘의 간극을 벌리고 있습니다. 아이패드마우스 커서는 둥급니다. 태블릿 사용자 환경(UI)은 손가락 끝이 차지하는 면적을 고려한 버튼 모양과 크기가 중요합니다. 애플은 마우스 커서가 아이패드 화면 각 버튼에 가까워지면 그 모양에 맞춰 '찰싹' 달라붙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게 화살표 커서로 정밀하게 조작하는 맥북과의 차이이자 두 기기의 정체성을 완전히 나누는 수단입니다.
 
소비자의 분석과 달리, 기업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비약적인 기술 진보와 애플 경영진 판단이 두 제품의 통합을 이끌 가능성도 있지요.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거나 ‘0%’에 가깝다고 봅니다.
 
  • 이범종

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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