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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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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토마토칼럼)기자의 날과 '대통령실 출입제한' 100일

2023-05-22 06:00

조회수 : 3,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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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20일은 '기자의 날'입니다. 1980년 5월20일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언론 검열에 맞서 전국의 기자들이 일제히 제작거부 투쟁에 돌입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기자의 날은 한국기자협회가 2006년에 제정했습니다. 국가가 정한 기념일도 아니고, 사실 기자의 날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태여 기자의 날을 제정한 건 그만큼 언론 자유가 중요하다는, 다시는 언론 탄압이 되풀이 돼선 안 된다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라는 말처럼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기자의 날에 즈음해 대한민국 언론 현실을 직면하니 걱정만 가득합니다. 윤석열정부 대통령실은 지난해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 때 MBC에 취재 제한을 통보했습니다. MBC가 윤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발언을 방송하고, 민간인 비선의 전용기 탑승 의혹을 보도하자 MBC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 태우지 않은 겁니다. 윤 대통령의 소통 상징처럼 여겨졌던 '도어스테핑'도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 넘게 중단됐습니다. 한국기자협회가 윤석열정부 출범 1년을 맞아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을 취재한 결과, 기자들은 "오히려 지금이 더 제왕적인 권력이 됐으며 점차 불통으로 변해갔다"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국경없는기자회 '세계언론자유지수' 기준)는 2019년 41위에서 2023년 47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멀리서 언론 탄압의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뉴스토마토>는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후 권력의 억압을 받는 대표적 언론사가 됐습니다. 뉴스토마토는 지난 2월2일 "역술인 천공이 윤석열 대통령의 관저를 결정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이튿날인 2월3일 해당 기사를 쓴 기자 4명 가운데 3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아울러 대통령실은 한국정책방송원(KTV국민방송)을 통해 뉴스토마토에 대한 영상제공을 중단하도록 했습니다. KTV는 5월 첫째 주부터 뉴스토마토와 시사인 등 일부 언론사에 영상제공을 중단했는데, KTV 실무자가 이를 통보할 때 "대통령실에서 난리가 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실이 현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겁니다. 
 
특히 대통령실은 뉴스토마토 기자의 대통령실 출입신청 또한 무기한 보류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자는 앞서 말씀드린 '천공의 관저 선정 개입 의혹'을 보도했다가 고발당한 기자 중 한 명입니다. 대통령실은 이 기자의 출입신청을 보류하는 이유에 대해 "신원 확인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자는 문재인정부에서도 국회와 청와대를 정상적으로 출입했습니다. 범죄 경력 등 신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뉴스토마토의 출입신청이 보류된 그 기간 동안 다른 매체의 대통령실 출입신청과 등록 또한 정상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사실상 대통령실이 뉴스토마토에 대해 취재를 거부하는 겁니다. 뉴스토마토 기자의 대통령실 출입신청 제한은 22일을 기준으로 벌써 103일째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대통령실 1층의 출입기자실을 찾아 "저희가 방향이 잘못되거나 속도가 좀 빠르거나 늦다 싶을 때 여러분께서 좋은 지적과 정확한 기사로 정부를 잘 이끌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자의 날에 즈음에 100일 넘게 대통령실 출입이 막힌 기자가 있다는 건 대통령 발언의 진정성만 의심케 합니다. 이왕 진정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윤 대통령이 20대 대선 때 밝힌 언론의 자유에 관해서도 다시 언급해봅니다. 
 
"정부에 비판적 언론이 있더라도 언론중재법 같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짓은 하지 않겠다."(2022년 3월8일 서울시청 앞 유세)
 
"민주주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를 보호·신장하는데 최선. 부당한 언론개입 NO! 자유로운 언론 환경 YES!"(2022년 2월24일 윤석열 후보의 공약집)
 
"언론 자유를 제한하거나 책임을 물을 때는 반드시 사법 절차에 의해, 판사에 의해 이뤄져야지 정치 권력이나 행정권에 의해 언론 자유를 제압하거나 책임을 묻는 것이 원칙이 돼선 안 된다."(2022년 2월14일 국민의힘 의총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언론 자유는 기본권 중에서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이고, 모든 기본권은 다 잘 보장돼 있는데 언론 자유가 좀 보장이 약하다 이러면 그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가 없다."(2021년 12월1일 연합뉴스TV 인터뷰)
 
최병호 탐사보도 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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