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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제주 4·3 첫 사과·한미 FTA·정치개혁·지방분권…노무현이 남긴 업적

①제주 4·3 첫 사과②한미 FTA③정치개혁④지방분권

2023-05-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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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월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도중 숙소에서 담배를 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가 장철영 제공, 뉴시스 사진)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주 4·3 첫 사과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정치개혁, 지방분권 등 재임 기간 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거쳐 빛나는 업적을 쌓았습니다. 국가가 꼭 가야 할 길을 앞두고 매번 놀라운 추진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정치'보다는 '정쟁'에 빠진 현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①금기 깨고 제주 4·3 첫 사과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0월31일 제주를 방문해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4·3 사건 관련해 과거 정부의 과오를 인정하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있는 사과였습니다.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극우화로 치달은 국민의힘 행보와 비교됩니다. 태영호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달 "제주 4·3은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해 파문을 낳았습니다. 결국 당 윤리위는 지난 10일 태 전 최고위원에게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내렸습니다. 다음 총선이 열리는 내년 4월 이전에 징계가 풀려 출마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사실상 당이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공식 추도식이 지난 2019년 5월23일 오후 2시 부터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묘역에서 열렸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미 FTA 추진실용주의 노선 마침표
 
한미 FTA 체결도 현재 일방 외교를 벌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윤석열정부와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전통적 지지층의 필사적인 반대가 있었지만, 조시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공동으로 FTA를 추진하고, 국익을 생각해 관철시켰습니다.
 
향후 세계 최대의 규모인 미국 시장에 용이하게 접근하고 경제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 당시 중국과 일본 등과의 FTA 협상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정부는 결국 2015년 중국과도 FTA를 체결합니다.
 
③지역주의에 도전한 '바보 노무현'
 
선거구제 개편·개헌 등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한 것도 주요 업적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영남=국민의힘', '호남=민주당'으로 굳어진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기존 소선거구제 대신 중대선거구제와 함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연동형비례제)를 동시에 제안했습니다. 당선자 시절에는 "지난 2004년 총선에서 과반을 점한 정당에 국무총리(지명권)를 넘기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05년에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 '대연정 카드'를 제시하며 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동의하면 국무총리·장관 임명권을 넘기겠다고 했지만, 야당이 받아들이지 않으며 무산됐습니다. 2007년에는 대통령 5년 단임제 대신 4년 중임제 원 포인트 개헌을 시도했으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난 2016년 2월1일 세종호수공원과 그 위로 사진 중앙에 책처럼 펼쳐진 국립세종도서관이 있고, 그 뒤로는 정부세종청사 건물이 연동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사진=뉴시스)
 
정치개혁 자체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시도 자체가 큰 울림을 줬다는 분석입니다. 이는 최근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지며 정치개혁에 소홀한 21대 국회와 비교됩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올해 들어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애초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지난달 말까지 최종안을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④지방분권 선언…세종시 탄생 계기
 
지방분권도 대표적인 업적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수도권 표심을 잃을 수 있다는 주위 반대에도 2002년 8월 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을 발의해 국회를 통과했지만, 2004년 서울 아닌 곳에 수도를 만드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며 계획에 차질이 생깁니다. 결국 이듬해 행정수도가 아닌 행정도시로 추진됐고 세종시에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건설됐습니다. 이후 수도권에 자리 잡은 공공기관들이 대거 세종으로 이전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화두를 던졌지만, 20년 가까이 흐른 최근까지 '수도권 일극주의'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청년층이 더 나은 일자리, 교육을 위해 수도권에만 몰리는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쟁적인 도시 체제에 지쳐 출산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현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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