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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혜

어떤 이의 한탄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9-0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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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참 뜨거웠던 불볕더위 아래, 지상에서도 뜨겁게 달궈지던 이슈가 있었다. 일본이 조선인의 강제노역 문제와 얽힌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 한다는 것. 일본은 그 유산을 통해 ‘186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의’ 근대화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했다. 2차 대전 당시 한국과 중국 등에서 시행된 강제노역 문제는 쏙 빼놓은 채로. 그러나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5월에 이미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이 담긴 등재 권고안을 내놓은 상태였다. 즉 등재가 최종 결정되더라도 역사적 사실은 기록될 것으로 보였다.
 
유네스코 위원회에서의 최종 결정은 하루 미뤄졌다. 일본이 강제노역 문제를 얼마나 인정하고, 어떠한 조처를 해야 하는지의 문제에 한국과 일본 양측의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6월부터 견해차를 좁혀가듯 보였던 양측은 오히려 더 멀어져 있는 것 같았다. 이 사실을 전한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는 네티즌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겼다. 일본이 어떻게 저리도 뻔뻔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나, 우리나라 외교부의 무능을 꼬집는 의견들이었다.
 
 
캡처/바람아시아
 
그 댓글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일본은 불 보듯 뻔하다’라는 것. 지금껏 자행되었던 역사 왜곡처럼 일단 좋은 말로 속여 넘어간 뒤 나중에 약속을 어길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숱하게 겪으며 얻은 그의 판단 능력이겠지만, 그 날 밤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얻어낸 하루로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다음 날 ‘일본이 조선인의 강제노역을 인정’했다는 기사가 떴다. 일본 대표단이 한국인이 자기 의지와 반하여 강제 노역을 하게 되었다고 발언했고, 언론은 결국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아, 이제 일본 나가사키에 있다는 그 군함도에 2차 세계대전 강제 노역 사실을 알리는 어떤 조치가 취해지겠구나.’
 
 
캡처/바람아시아
 
그러나 7월 6일,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황은 또 달라졌다. 일본의 기시다 외무상이 기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단의 발언문은 강제노역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고위급 정상은 ‘forced to work’라는 영어 어절을 꽤나 독특하게 해석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똑같았다. 네티즌은 이럴 줄 알았다고 말했다. 더 확실하게 대응했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아베에게 뒤통수를 맞고도 정신을 덜 차렸느냐는 것.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러한 상황 판단이 안 되었는지, 한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캡처/바람아시아
 
하시마 탄광(군함도)에서의 작업은 사우나 안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는 증언이 있다. 섭씨 35도, 습도 95% 이상의 환경이란다. 엊그제의 뜨거웠던 날을 기억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온몸에 땀이 고이는 시간. 에어컨 바람이 절실해진다. 너무도 밖에 있기가 싫다. 그래도 습도 95%는 아니다. 몇십 년 전의 ‘그곳’보다는 낫다. 그곳은 먼지도 일고, 어두컴컴하고, 먹을거리도 없었다. 내가 이 문제를 계속 주시할 수밖에 없는 그런 증언이다.
 
세계문화유산 확정 당시 일본 정부는 약속했다. 강제노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해왔는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하기로 한 것이다. 2015년 8월 26일, 여전한 오늘. 일본이 그 조치 작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제대로 된 소식을 기대하는, 기대할 수밖에 없는 나는 좀 초조하다. 나만 헛된 것을 바라는 걸까. 또, 내가 틀리게 될까?
 
 
정연지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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