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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철

(토마토 칼럼)염치없는 사회

2016-10-0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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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제자 헌이 부끄러움, 곧 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이에 “나라에 도가 없는데 국록을 받아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방무도곡치야)”이라고 답했다. 또 “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하고 귀하게 사는 게 부끄러운 일(방무도부차귀언치야)”라고도 했다. 요즘 주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 ‘염치’에 관한 논어 헌문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말 얌체의 어원 정도 되는 한자 염치의 사전적 의미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이 단어가 왜 이렇게 회자가 되고 있는 것일까. 아마 보통 사람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 언론에 비일비재하게 알려지고 있지만 정작 책임지는 사람은 보도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숨졌지만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 주치의란 분은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사망 진단서를 발급했다. 사망진단서를 재검토한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학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조차 ‘외인사가 맞다’고 했지만 담당 주치의는 가족들이 적절한 치료에 동의하지 않아 숨졌다며 ‘병사’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공권력에 의해 쓰러진 농민이 1년여간 사경을 헤맬 때 병원 방문은 물론 사과 한마디 안한 대통령과 ‘병사’를 주장하는 주치의. 평범한 국민들은 이들에게서 염치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할 것이다.
 
이뿐이랴. 신임 농림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빌미로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가 대통령의 간곡한 어명(?)을 받고는 일주일만에 퇴각한 집권 여당 대표. 자신을 흙수저보다 못한 무수저 출신이라며 서민을 위할 것처럼 선거 운동을 했던 그가 정작 서민들은 전기누진세에 각종 세금에 아우성 칠 때는 조용하다가 주군의 뜻에 반하는 국회의장을 몰아내기 위해 제 한몸 희생하는 모습에 국민 그 누가 염치가 있다 하겠나.
 
정치권과 공권력이 저 모양이니 그들이 관리 감독을 하는 공공기관 역시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일례로 메르스 사태 부실 방역 총책임자라고 생각했던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처벌은 커녕 오히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가시는 기적을 행하셨다.

덧붙여 하나 더. 가습기 살균제에 이어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까지 적발되면서 정부의 화학물질 부실 점검이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담당 부서인 식약처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 국감 발표 전까지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치약에 사용됐다는 점 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식약처는 치약에 사용된 성분이 극미량이라 삼켜도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다 불과 하루만에 갑자기 제품을 회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스로의 주장을 뒤엎은 격이다. 국민들은 식약처의 허가를 믿고 수년간 치약을 사용했지만 막상 제품 회수를 발표하는 과정서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다.
 
맹자의 진심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불가이무치. 사람이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선 안된다는 뜻이다. 부끄러움좀 알고 사는 염치있는 사회에 살고 싶다.
 
앞서 직책과 직급은 표기해도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염치있고 싶었던 자가식 표현이다.
 
정헌철 생활부장 hunchu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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