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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

(시론)‘정치의 주술화’로 역주행하는 대통령

2016-10-3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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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와 함께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정을 농단하고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참담한 소식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소식이 국제적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의 자존심과 국격은 더욱 상처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8일 “한국인들이 대통령과 주술사(shaman fortuneteller)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와의 관계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최순실씨는 고 최태민씨의 딸로 부녀가 대를 이어 박 대통령과 관계를 맺고 있다”며 2007년 7월20일자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 전문을 인용해 “최태민 씨는 ‘한국의 라스푸틴(요승)’으로 불리며 과거 박 대통령의 심신을 지배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체 박근혜 대통령은 왜 참모진이 아닌 민간인인 최씨에게 의존해 왔던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언론들과 정치권은 사이비 교주로 알려진 최태민씨와의 관계와 여러 증언을 들어,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가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신학림 미디어오늘 대표는 27일 “최순실은 영혼합일교, 영혼합일법(최면술)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일종의 교(敎)의 총재, 교단의 교주일 가능성이 있고, 박 대통령은 신도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2년 전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비선실세로 지목하여 논란을 촉발시켰던 박관천 전 경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최순실 정윤회씨 얘기만 나오면 누나가 최면에 걸렸다”고 증언한 바 있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27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 “2년안에 북한이 붕괴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데, 최씨는 주술적 예언가임에 틀림없다”며 “최씨가 무슨 근거로 그런 주술적 예언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만약 대통령이 이 말에 현혹돼 외교·대북정책을 펼쳤다면 심각하다”고 언급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이건 정말 독재정치도 아니고 한마디로 우스운 ‘신정정치’라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도 “미르재단도 미륵과 연결된다고 한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최순실씨의 선친인 최태민 목사가 스스로 미륵이라고 했다”면서 “지금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최순실의 사교(邪敎)에 씌어서 이런 일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주술(呪術)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비적인 힘을 빌어 여러 가지 현상을 일으키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해결하려고 하는 기술을 말한다. 부족국가시대의 지배자들은 대체로 무속적 기능을 가진 정치인들이었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단군왕검이 대표적인 주술적 기능을 가진 정치지도자였다. 
 
 막스베버는 <탈주술화 과정과 근대: 학문, 종교, 정치>라는 책에서 근대화와 근대정치의 탄생을 종교와 정치의 합일로부터 이 둘이 분리되는 ‘脫주술화’(disenchantment)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번 사건이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대로, 종교적 주술에 의해 대통령이 포획되어 벌어진 사건이라면 우리정치를 ‘정치의 주술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박대통령의 정치가 주술화에 의존했다면 정치개혁이전에 종교개혁이 필요할 정도로, 이것은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조국의 근대화’에 반하는 역주행임에 틀림이 없다. 박정희는 조국의 근대화를 명분으로 마을 토착신을 모신 성황당을 부수고 미신타파에 앞장섰다. 많은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부친이 일궈낸 조국 근대화의 이미지를 보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의 업적과는 정반대로 역주행했다. 즉 박대통령은 ‘정치의 주술화’에 빠져 전근대로 역진하여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시민이라고 하는 공화국 정신을 부정하고, 정교일체의 종교공동체와 주술적 신도정치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어쩌다가 사교(邪敎)에 홀린 ‘사제(司祭)형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이것은 우리 정치문화가 대체로 ‘보스-추종자의 계파정치’와 일종의 ‘열광하는 빠문화’로, 여기에는 신앙공동체의 교주와 신도가 공유하는 후원-추종관계(도제관계/사제관계)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사제형 정치인의 대표적 인물은 궁예이다. 궁예는 스스로 ‘미륵’이라 칭하며 일종의 ‘관심법’이라는 종교적 판단을 통해 정치를 했고, 자신의 반대자들을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자로 몰아 숙청했다. 그렇다면 ‘신도’와 ‘시민’의 차이는 뭘까? 자율적인 비판없이 추종만 하여 배타성이 강하고 쏠리고 편향적인 사람이 전자라면 후자는 대화와 토론 및 논쟁을 통해 참여하고 견제하는 균형있는 사람이다.
 
 정치의 주술화는 박대통령만 빠진 것일까? 진영논리와 진영대립은 진보와 보수라는 명분으로 패거리를 만들고 싸우면서 선과 악의 이분법을 사용하고, 서로를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일종의 ‘정치의 주술화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정치 모두가 정치의 주술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의 주술화’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적절한 사회생활을 통해 상식을 배우고 타인의 고통과 처지를 알며 타인과 함께 대화와 소통하며 건전한 비판과 논쟁을 해 본 ‘시민적 정치인’이 정치적 공론장의 검증을 통해서 대통령으로 선출돼야 한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비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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