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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한국판 '브라운 판결', '박근혜 탄핵심판'은 성공할 것인가

미 연방대법원, 3년 걸려 대법관 9명 의견 일치

2017-03-0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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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교육계에서는 ‘분리하되 평등하면 된다’는 원칙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1954년 5월 얼 워렌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원장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일명 브라운 판결)’ 사건에서 이같이 판결했습니다. 대법관 9명의 전원 일치된 의견이었습니다. 흑인 용접공 올리버 브라운은 여덟살 난 딸이 먼 길을 통학하는 것이 안타까워 소송을 낸 지 3년 만에 승소를 확정받았습니다. 58년간 이어져 온 미국의 ‘인종 분리는 정당하다’는 사회 원칙도 58년만에 깨졌습니다. 1896년 연방대법원이 ‘플레시 판결’에서 "흑백을 '분리하더라도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면 합헌"이라고 판결한 뒤 내려온 미국 사법부의 확고한 입장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없는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우리의 헌재 역할을 합니다. ‘플레시 판결’은 열차에서 흑인칸과 백인칸을 따로 두게 한 루이지애나 주법에 대한 위헌성을 다툰 사건이었습니다.
 
1954년, 연방 대법원이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에서 공립학교의 통합을 명한 뒤로, 흑인 아이들과 백인 아이들이 함께 교육을 받게 되었다. 출처/미국정부
 
‘인종 분리’, 특히 교육에서도 이 원칙이 적용되는 것을 두고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 측 입장이 극한으로 대립했습니다. 대법관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1953년 9월 처음 재판을 담당했던 프레디 빈슨 대법원장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워렌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워렌은 충실한 공화당 소속 연방검사 출신으로, 주지사를 역임했습니다. 그만한 적임자는 없었습니다. 아이젠하워도 자신의 결정에 만족했고, 보수 공화당파 국민들도 신임했습니다. 그러나 워렌 대법원장 취임 이후 여성과 흑인 인권에 무게를 둔 대법원 판결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중 결정적인 것이 ‘브라운 판결’입니다. 특히 대법관 9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는 결론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브라운 판결’에 대한 대법관들의 첫 의견은 ‘5대 4, 위헌’이 다수였습니다. 전임자인 빈슨 대법원장도, 워렌 대법원장도 다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선고를 미뤘습니다. 국론이 첨예하게 대립된 중차대한 문제를 대법관들 의견이 엇갈린 상태로 결정을 내는 것은 국민분열과 대 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워렌 대법원장의 정치력이 발휘됐습니다. 그는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다수 대법관들과 함께 합헌, 즉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들을 하나씩 설득해 나갔습니다. 물론 치열한 토론과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서였습니다. 결국 ‘5대 4, 위헌’ 의견은 6대 3, 7대 2, 8대 1까지 의견차가 좁혀졌습니다. 마지막까지 반대했던 스탠리 리드 대법관도 결국 다수 의견으로 입장을 같이했습니다. ‘워렌 대법원’은 같은 사건에서 "흑인 아동을 거부하는 공립학교의 분리 정책은 평등한 법의 보호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4조에 위반된다"고도 판결했습니다. 워렌 대법원장은 정교한 법논리나 날카로운 통찰력은 부족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합리적 형평성과 정치적 균형성을 사법부에 실현한 대법원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을 판결한 워렌 미국 연방대법원장과 대법관들. 앞 줄 가운데 앉은 사람이 얼 워렌 대법원장이다. 사진/미국 연방대법원
 
오늘(8일)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일이 결정됐습니다. 오는 10일 오전 11시입니다. 총 17차에 걸친 변론, 양측 총 변호사 30명(청구인측 변호사 16명, 피청구인 측 14명)에, 신청만 100여명에 육박하는 증인, 수만페이지에 달하는 서면과 서증들. 그리고 19차에 걸쳐 지난 14일 누적인원 1500만명(주최측 추산)이 모인 촛불집회와 같은 날 16차 집회에만 500만명이 참여했다는 탄핵반대 집회가 이날 끝을 봅니다.
 
그러나 과연 끝일까요. 촛불집회와 탄핵반대집회가 세 대결 양상으로 번지면서, 입법기관의 적법절차를 거쳐 세운 특별검사와 탄핵심판 재판장을 살해하겠다는 공개협박이 나돌 만큼 사회는 험악해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광장에서 촛불을 들면 ‘빨갱이’가 되고 태극기를 흔들면 이른바 ‘꼰대’, ‘박사모’ 취급을 받게 됐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면 TV를 같이 보던 며느리가 박 대통령을 욕한다고 시아버지한테 얻어맞는 일도 일어나고, 각기 다른 곳으로 주말 외출을 나갔던 아들내외와 시어머니는 시청 광장에서 각각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멋쩍게 만나는 일도 있었답니다. 여기에는 ‘사이비 혁명가’ 등이 출몰해 군중을 미혹한 탓도 있었겠습니다만 가족이, 시민이, 국민이 둘로 갈라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의 ‘브라운 판결’ 사건의 전말을 세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어떻습니까? 1950년대 흑백으로 갈린 미국과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많이 닮지 않았습니까?
 
일 전북 전주시 오거리광장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이 주최한 태극기 집회가 열린 가운데 한 참가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있다. 전북에서 탄기국이 주최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린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사진/뉴시스
 
이날 헌재 관계자는 “선고기일 지정 외에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일도 평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도 했습니다. 통상 탄핵심판은 변론과 변론종결, 평의, 평결, 선고 절차로 진행되는 걸 고려해보면 헌재 재판부 결정이 각하인지, 기각인지, 인용인지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결정문을 각하, 기각, 인용 세 개를 준비해놓고 선고 당일인 10일 재판관들이 최종 평결한 뒤 결정문에 서명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선고 1시간 전까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고 합니다.
 
기자는 이날 선고기일이 결정되기 전, 각기 다른 성향의 헌법연구관 출신 법률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이랬습니다. 우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선고기일 지정이 늦어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까지 헌재에서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한 한 법률가는 “선고일 지정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할 문제는 당사자들에게 고지한 뒤 바로 선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법률가도 “선고 직전 마지막 날에 평결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법률가는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 재판관들 출근하실 때 표정이 어땠나. 담담한가, 격앙돼있나.” 이 법률가의 말인즉 쟁점별로 법정의견(다수의견)에 대한 평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얼굴에 표가 나도록 재판관들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각하 또는 기각이냐 아니면 인용이냐에 대한 헌재 재판부의 결정은 선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이날 재판관들 출근 표정은 담담했습니다. 과연 이날 오후 3시부터 시작한 평의가 2시간30분 정도 지나자 선고기일이 결정됐습니다.
 
얘기가 길어집니다만, 8명 재판관 의견이 5대 3으로 갈릴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론상으로는 탄핵 기각입니다만, 법률가들은 실무상으로 선고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결원인 1명에 따라 결정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다수 의견 측 재판관들이 결정문에 서명을 거부할 것이고, 결국 선고는 결원인 재판관이 충원될 때까지 보류된다는 해석입니다. 4대 4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재판관). 사진/헌법재판소
 
그렇다면, 그동안 헌법 재판관들은 평의에서 어떤 논의를 하고 있었을까요. 선고기일 지정이 유동적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선고일에 너무 임박해 결정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법률가들의 분석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수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국정공백과 불안상황이 너무 장기화 되고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론분열을 봉합하기 위해 다수 의견 쪽의 소수 의견 쪽에 대한 설득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상황에서 선고기일을 너무 일찍 정해 발표하면 오히려 선고일까지의 기간이 길어져 양측의 대결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때문에 선고기일 지정 발표와 선고기일의 간격을 가급적 짧게 함으로써 불안상태를 최대한 줄여보자는 생각일 것’이라는 분석도 결을 같이 합니다.
 
‘과연 브라운 판결처럼 전원 일치된 의견을 내는 것이 꼭 옳은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없지 않았습니다. 오늘 얘기를 나눈 한 법률가는 “아무리 설득이라고 할지라도 일치된 의견을 내기 위해 소수의견을 다수의견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작위적인 것으로 온당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틀렸다고 보기는 어려운 지적입니다.
 
돌아 보건데, 60여년 전 ‘브라운 판결’은 미국의 흑인 인권신장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 중 하나입니다. 반세기 후의 일이긴 하지만 흑인 출신의 미국 변호사가 대통령으로 당선돼 얼마 전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브라운 판결'의 진짜 의미는 모든 미국인들이 승복하면서 국민통합을 결국 이뤄냈다는 것입니다. 대법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을 이끌어 내기 위해 미 연방 대법원장이 두명이나 나섰더라도 미국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도 미국은, 아니 현재 미국은 없었을 겁니다.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는 한다는 것에 미국인들이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평우 변호사(전 대한변협회장)가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 광장에서 열린 제14차 '탄핵반대' 집회에서 환호하는 참가자들에게 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쳐.
 
우리는 어떨까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탄핵정국이 끝나면 곧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다른 세 집결과 힘겨루기가 있을 테지요. 어지간히 걱정되는 것은 한국판 ‘브라운 판결’ 사건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헌법 재판관 전원일치된 의견으로 어떤 결정이 난다고 하더라도 정작 우리가 승복하지 않으면 역사적 의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변론 종결 후에도 심판정 밖에서 이미 패배한 양 ‘무효’, ‘각하’라고 악다구니를 쓰며 떼를 쓰는 인사들을 보면 그 걱정이 현실이 될까 매우 우려스럽고 경계됩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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