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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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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변방 장수 이재명의 대권 도전기, 119일 마크맨의 기록-①

2017-04-05 17:50

조회수 : 5,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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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7일부터 2017년 4월4일까지 119일 동안 이재명 성남시장의 마크맨으로 활동했다.

마크맨이란, 축구나 농구 등 운동경기에서 상대편의 특정 선수만 전담하며 수비하도록 배정된 선수다.

정치부에서는 유력 대선주자나 특정 정치인을 따라다니며 그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를 뜻한다.

119일간 이재명 시장을 마크하며 취재한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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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8일 이재명 시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사석에서는 형님이자 정치적으로는 동지'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함께했다. 당시는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탄핵 릴레이 라이브'라고 해서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할 때까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릴레이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날은 이 시장이 연사로 초청돼 박 시장과 함께 했다. 원래 행사 시간은 오후 7시30분이었는데, 이 시장은 저녁 8시쯤 국회 앞에 도착했다. 이날 비가 정말 많이 내렸다. 두 사람의 대화와 연설을 받아 적자니 노트북이 비에 젖을 것 같았고, 필기를 하려고 하니 수첩도 금방 젖어버렸다. 당시 이 시장은 탄핵정국에서 어느 정치인보다 앞장서서 '박근혜 퇴진'을 주장했고, 덕분에 대선후보 지지율이 15%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 지지율 15%라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야권에서는 두번째 유력주자였다. 두 사람의 대화 중 박 시장이 이 시장을 두고 '부럽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니, 이 때 이 시장의 인기는 두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불과 이틀 뒤 그는 이날을 회자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원순 형님과 국민승리의 길을 가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반문연대'를 도모한다는 꼬투리를 잡혔고, 이때부터 지지율이 추락하는 역풍을 맞고 말았다.




2016년 12월9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날이다. 사진은 가결 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이재명 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다. 이날 오전 이 시장은 로텐더홀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연설을 한 뒤 곧바로 의원들과 사진을 찍었다. 이 시장은 평소 자신이 경기도 성남시장 출신의 대선주자임을 강조하며 '변방 장수'라고 표현했는데, 이날 의원들은 변방 장수라도 대선주자는 대선주자였던지 이 시장을 바로 중앙으로 불러서 사진을 찍었다. 더구나 이 시장이 구호를 선창하면 나머지 의원들이 제창했다. 하기야 당시까지만 해도 그의 지지율이 15%를 넘으며 전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던 때였으니 미리 눈도장을 찍고 사진에 함께 잡히는 모습이 나와서 손해 볼 일은 없었을 테다. 하지만 사진에 등장하는 의원들 가운데 정작 이 시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석달여 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열릴 때까지 이 시장 선거캠프에 합류했거나 지지 의사를 밝힌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2016년 12월11일 이재명 시장은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호남으로 첫 지역민심 탐방을 나섰다. 사진은 전북 익산시 원광대에서 열린 강연회다. 당시 이 시장은 '사이다 발언'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설화'라는 악재에 시달렸다. 이 시기 그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이름 없는 대학' 발언이었다. 이 시장은 가천대(경기도 성남시 소재)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일이 있는데, 학위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그런데 그는 이 일을 해명한답시고 "이름 없는 대학의 학위가 뭐 필요하다고 표절을 했겠느냐"라고 말하고 말았다. 이게 일파만파 번지면서, 소년 노동자-검정고시-중앙대 졸업-사시 합격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썼던 이 시장이 오히려 학력을 차별한다는 공격까지 시작됐다. 이날 원광대에서 열린 강연은 이 시장이 해당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명한 자리기도 했다. 당시 청중으로 참석한 한 대학생이 이 시장이 내뱉은 '이름도 없는 대학' 발언을 문제 삼고 경위에 대해 묻자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제가 잘못한 일이며 사과한다"며 "학교 측과 오해가 생긴 과정에서 제가 발언을 경솔하게 해 상처를 입은 학생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굳이 변명하자면 정확한 워딩은 '이름도 잘 모르는'인데, 이게 왜곡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어찌 되었든 신중하지 못했고 나도 관련 기사를 보고 진땀을 흘렸다"며 "무엇보다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한다. 학생들에게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2016년 12월12일 이재명 시장은 경기도 성남시 오리CGV에서 도올 김용옥과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영화 시사회를 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중국 연변의 어느 대학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중국에 남아 있는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본 일정과 감흥을 영상으로 찍어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는 역사를 좋아하는 나도 무척 기대했던 것이고, 주위 극장에서는 상영계획이 안 잡혔길래 일부러 표를 사서 직접 관람했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중간에 그냥 졸고 말았다. 이날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시장과 김용옥 선생이 서로 같은 주제로 대화하면서도 결국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기이한 장면을 봤다는 점이다. 이 시장은 도올의 어떤 질문에도 '공정국가 건설', '적폐청산'으로 결론 냈고, 도올은 '고구려 패러다임 구현'만 말했다.




이재명 시장은 2016년 16일부터 17일까지 울산광역시와 경북 구미, 대전광역시 등을 방문해 영남과 충청권 민심을 탐방했다. 사진은 16일 울산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간부들과 간담회를 하는 모습이다. 당시 주제는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에 관한 것이었다. 노조가 "내년 5000명 이상의 구조조정 예상된다"고 말하자 이 시장은 "구조조정이라는 게 책임을 분담해야지, 경기가 좋을 때는 회사가 이익을 보고 경기가 힘들 때 손해는 노동자에만 전가시킨다"는 내용으로 대화를 나눴다. 소년 노동자 출신임을 강조한 이 시장은 "대한민국 첫 노동자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노조와의 밀착성을 높이려고 많은 공을 들였다.




2016년 12월17일 이재명 시장은 울산에서 구미로 이동해 시민들을 만났다. 사진은 이 시장이 구미역 앞에서 임시로 마련된 무대에 올라 연설하는 모습이다.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경북에서도 박정희-박근혜 향수가 무척 깊은 동네다. 그래서 이날 연설은 애초 예정됐던 장소 대관이 취소돼 급한 대로 역 앞에서 연설을 했다. 당시 이 시장은 "성남시가 청년배당과 산후조리 지원 등 복지에 돈을 쓸 때 구미시는 1900억원을 박정희 대통령 우상화 사업에 쏟아부었다"며 "어떤 지도자를 뽑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었던 탓에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성남시장이 성남에서만 잘하지 뭐 한다고 구미까지 와서 길을 막고 지랄이냐"라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2016년 12월22일 이재명 시장은 고향인 경북 안동을 찾았다. 사진은 안동 가톨릭상지대에서 열린 강연회 모습이다. 무대 뒤에 걸린 '억강부약(抑强扶弱: 강한 것을 억누르고 약한 것을 돕는다)'이라는 문구는 공정국가 건설과 적폐청산을 주장한 이 시장의 핵심 슬로건이기도 했다. 경북 안동이라면 경북에서도 손꼽히는 양반 동네이자 보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록 고향이라고 해도 이 시장이 이곳에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날 1, 2층으로 이뤄진 강연회장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곳을 가기 전 한 지인이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인물인가 보려면 고향 사람에게 어떻게 평가받는지 보라"고 말해줬었다. 이날 이 시장은 고향에서 환대를 받기도 했거니와 초등학교 친구들, 고향 친지들까지 와서 그를 응원해줬다. 하지만 이 시장은 이날 자신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특유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드러내 아쉬움을 남겼다. 내용인즉, 셋째 형과의 불화를 이야기하던 중 한 청중이 해당 사건에 대처하는 그의 태도를 지적하자 이 시장은 "내가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거 참, 나보다 그 일을 잘 알아요?" 하면서 짜증 섞인 말투를 내뱉었다. 이런 모습은 이날만 그랬던 게 아니라 앞으로도 두고두고 반복되면서 이 시장의 호감도를 깎는 역할을 했다.




2016년 12월25일 이재명 시장은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KTX 해고 여승무원과 함께하는 성탄절 예배'에 참석했다. KTX 해고 여승무원들은 2006년 코레일이 KTX 여승무원들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해고하자 복직투쟁을 벌이며 10년 넘게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이날 이들을 응원하기 위한 예배가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고, 대선주자로서는 이 시장이 유일하게 참석했다. 노동자 대통령을 표방한 이 시장으로서는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게 의미 있는 일이었겠지만, 이런 인연을 통해 전국철도노조 KTX 승무지부의 김승하 지부장은 두달여 뒤 이 시장이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후원회가 출범했을 때 공동 후원회장이 되어 이 시장을 돕게 된다.




이재명 시장이 대선주자이기는 한데 현직 성남시장이다 보니 대선 행보와 딱히 관련이 없는 시정활동도 취재를 갔다. 사진은 2016년 12월28일 성남 시내 한 삼계탕집에서 그해 신규 임용된 새내기 공무원들과 가진 삼계탕 간담회 모습이다. 당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창궐했는데, 이 시장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AI에도 걱정 없이 닭 소비를 촉진하자며 마련된 행사였다. 이날 행사에는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받고 공부해 공무원이 된 사람도 있었고,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공무원 임용에 도전해 합격한 사람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시장은 "정부의 토종닭 유통허용 조치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철회를 요구했다"며 "살처분 보상금과 비용을 전액 정부가 지원하고 출하 지연 양계산물을 정부가 수매하는 한편 농가에 긴급 운영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29일 이재명 시장은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5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사진은 추모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이 시장의 모습이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 시장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 기동민·문희상·박완주·우원식·유은혜·이종걸·전해철·진선미 민주당 의원, 유인태 전 의원 등 전현직 민주당 인사들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이 참석했다. 공정국가 건설과 적폐청산을 강조한 이 시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공정사회 건설은 김근태 전 의장이 말한 민주주의와 똑같은 것" 이라며 "자유와 평등, 공정이 넘치는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것이 그분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고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구조와 정치가 필요한데, 구태 기득권들의 세력연합을 국민들이 경계하고 막아야 한다"며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공정하게 경쟁하는 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 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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