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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토마토칼럼)안경환 후보자를 위한 변론

2017-06-1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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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TV조선은 정규방송에서 <"술엔 여자 필수…판사 성매매, 아내 탓도" 안경환 책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리포트 한 꼭지를 내보냈다. 지난해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낸 책 '남자란 무엇인가'를 들춰본 결과 “여성과 성에 관한 표현 일부가 논란거리”라는 것이다.
 
앵커의 소개는 다소 완곡했지만 리포트는 적나라했다. 표현 대부분이 묘한 달짝지근함과 낯 뜨거움으로 시청자를 쭉 빨아들임과 동시에 단번에 여성들의 분노를 폭발시킬 만 했다. 리포트가 나간 뒤 안 후보자는 이미 ‘여성 비하자’, ‘성매매 찬성자’, ‘성의식에 문제가 있는 자’가 돼 있었다. 안 후보자의 제자로 한평생 그를 존경해 온 법조계 주요 인사들이 받은 충격도 매우 컸으리라.
 
뒷일은 상상하는 대로다. 중앙지를 포함한 언론사 거의 대부분이 대서특필하면서 이 보도를 뒤 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보다 ‘섹시’한 제목을 뽑고 자극적 표현을 찾기에 바빴다. 언론의 눈에는 이미 ‘안 후보자는 여성 비하자’라는 주홍콩깍지가 씌였다. 심지어 이 중에는 안 교수의 저서에 대한 서평에서 ‘성욕에 매몰돼 있는 시대착오적인 남성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찬사를 보낸 곳도 있다.
 
첫 보도 다음 날 야권은 대동단결했다. 정의당이 브리핑을 통해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노골적인 여성 비하 표현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못 박았다. 같은 날 바른정당도 "예비강간범 안경환은 물러가라"는 논평을 냈다. 국민의당에서는 “‘안 후보자는 청문회에 나올 자격 자체가 없으니 본인이 스스로 자진사퇴하거나 문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논평했다. 자유한국당의 반응은 생략한다.
 
안 후보자는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다만, "종합적인 내용을 읽어보신 독자 판단에 맡긴다. 저의 입장은 청문회 때 말씀 드리겠다"고만 말했다. 여론이 계속 들끓자 14일 법무부를 통해 “언론 등에서 일부 저서의 내용을 발췌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후보자가 ‘남자의 욕구, 공격성, 권력 지향성과 그에 따른 남성 지배 체제를 상세히 묘사하고 비판하기 위한 맥락’에서 사용한 표현들”이라고 추가 해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허사였다.
 
일련의 과정을 뜯어보면 이번 논란은, 전형적인 여론몰이로 보인다. 인사검증이라는 구실로 유력 언론이 이른바 ‘건수’를 잡아 돌리면 ‘물먹은’ 언론사들이 죄다 따라간다. 여기에 정적인 정치세력이 공식논평을 내 힘을 실어 속도를 더하고, 탄력 받은 언론은 후속 단독을 내느라 정신이 없다. 땅에 떨어진 각설탕에 개미들이 달라붙는 모습이다. 그러는 사이 인사검증 당사자는 사정없이 조리돌림을 당하느라 만신창이가 된다.
 
상당수의 시청자와 독자, 즉 국민은 이 ‘건수’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밀하고 신중한 ‘팩트 체크’는 대부분 생략되기 쉽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적인 기망행위다. 이번 논란만 보더라도 보도나 논평 전 안 후보자의 책 '남자란 무엇인가'를 정독하고 숙고한 언론이나 정당은 얼마나 될 것인가. 견지망월도 유분수다. 중립을 표한다는 언론도 “결국 선택은 국민의 몫”이라고 자신들의 임무를 떠넘기고 있다.
 
가히 ‘섹스스캔들’에 버금가는 이번 논란은 70세 고령의 법학자,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 한국헌법학회장,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해 온 국가원로를 사장시키기에 더 없이 좋은 멍에다. 그 타격은 고스란히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된다. 새 정부의 가장 핵심 과제인 검찰개혁을 맡길 만큼 문 대통령은 안 후보자를 신뢰하고 있다. 이면을 잘 살펴보면 결국 모든 논란의 발생과 진행, 최후에 기다리고 있는 일격은 안 후보자가 아닌 문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의도된 스캔들이 창궐할수록 국가의 걸음은 더뎌진다.
 
최기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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