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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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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진실이 이끄는대로…"반갑습니다. 최기철입니다."
(토마토칼럼)이 부회장과 삼성이 사는 길

2017-08-3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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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일이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있다가 개업한 한 변호사가 있었는데, 퇴임하자마자 대기업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변신해 사건을 싹쓸이 했다.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기묘할 정도였다. 맡는 사건마다 무죄 또는 집행유예 등을 받아냈다. 법정에 선 회장님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그가 한창 잘 나갈 때, 운 좋게 사석에서 우연히 만나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필자가 물었다. “수임하시는 사건마다 승소하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죄가 있다면 깨끗이 인정하고, 진지한 반성과 함께 선처를 바라는 거예요. 법리다툼은 그 다음입니다.” 이 변호사는 판사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상당기간 형사사건을 담당했다. 기업 형사사건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서초동과 강남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사건 전문변호사들도 대부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 결과를 보고, 10여년 전 그 변호사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과 함께, 일각에서는 구형 징역 12년에 선고형이 징역 5년이라면, 피고인 측에서는 나름대로 선방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항소심에서는 무죄 또는 집행유예가 가능할 것이라는 설익은 전망도 나온다. 과연 그럴까.
 
국정농단 사건 재판 중 이 부회장은 물론, 함께 기소된 삼성그룹 전·현직 수뇌부의 태도는 매우 불성실했다. 모든 초점이 ‘이 부회장 구하기’에 맞춰졌다. ‘뇌물’과 관련된 일은 이 부회장에게 전혀 보고가 안 된, 바로 그 아랫선이 알아서 한 일이기 때문에 이 부회장은 죄가 없다는 논리다. 총대는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맸다. 진실규명에 대한 협조는 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이다. 출처는 불명하지만 법정 밖에서는 '재판부가 양형이 아니라 뇌물죄의 유무죄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무죄선고 가능성에 슬쩍 무게를 싣는 뜬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오만하고 무리한 전략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부회장에 대한 웃지 못할 ‘디스’도 나왔다. 최 전 실장은 피고인 신문 중 이 부회장에 대해 “경험이 부족하다. 기본 마인드 자체가 아직 총수가 아니고 그냥 후계자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과 삼성 전·현직 수뇌부의 오만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아예 조직적으로 진술을 거부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7월10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모든 질문에 성심껏 말하고 싶은 게 진심이지만, 변호인 조언에 따라 증언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유를 댔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나 황성수 전 전무는 입사시기 등 기본적인 신상을 확인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조차도 거부했다.
 
삼성 수뇌부와 박 전 대통령, 최순실은 뇌물죄의 공범관계다. 공범에 대한 진술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삼성 수뇌부의 진술거부권은 보장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최씨에게 돈을 건넨 것이 박 전 대통령의 강요 때문이라고 일관되게 유지해 온 삼성 측 주장과 모순된다. 결국 ‘모르쇠’ 전략은 공범 관계라는 심증을 재판부로 하여금 더욱 강하게 형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자승자박인 셈이다.
 
무모한 전략으로 큰 화를 본 예가 있다. 최태원 SK 회장과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2012년 1월 계열사가 창업투자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2800억원 가운데 497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최 부회장은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최 회장 형제는 혐의를 벗기 위해 스스로 1심 진술을 뒤집고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혐의를 미뤘다가 오히려 최 부회장까지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항소심이 곧 시작되겠지만 이 부회장 등이 뇌물 혐의를 벗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 측은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나 최씨도 마찬가지이다. 공범간의 교감일지 모르나 치명적인 오류다.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제 아무리 막강한 대형로펌을 방패로 내세워도 불가하다. 이 부회장이 진정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의 후계자라면, 이제부터라도 겸허한 마음으로 자복하고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국정농단의 뿌리를 완전히 들어내는 데 적극 기여해야 한다. 그것이 뒤늦게 사재를 털어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하거나 대규모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고 공언하는 것 보다 훨씬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삼성도 '이 부회장 구하기'를 멈춰야 한다. 그래야만 이 부회장도 살고 삼성도 산다.  
 
최기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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