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최병호

choibh@etomato.com

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동아시아 문명의 천하국가론

2018-01-17 13:41

조회수 : 2,300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대한민국은 세계시민들이 공감하고 지지할 어떤 보편적 가치와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가. 영국 싱크탱크인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2032년이 되면 세계 10대 국가 중 5개국이 아시아에서 나오리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긴밀해지는 지구 공동체를 전통적 국력 개념 대신 지역적 문명 개념의 새로운 권역으로 나눠볼 때 앞서 언급한 10개국은 개별국가가 아니라 역사·문화를 근거로 한 문명권으로 묶을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문명, 여전히 세계패권의 중심인 미국 문명, 유럽연합을 근간으로 한 서구 문명, 라틴아메리카 중심의 브라질 문명, 남부아시아의 인도 문명, 이슬람을 중심으로 한 인도네시아 문명 등이다. 국가주의를 기초로 지역적 교류와 갈등이 공존하는 세계 6개의 문명권이 각자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한 채, 글로벌 거버넌스의 협력을 추구하는 시대가 앞으로 30년 동안의 세계사 방향이다.
 
반면 세계정치의 리더십은 낙관적 전망을 주지 못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전통적 미국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로 회귀했다. 중국 역시 패권화와 폐쇄적 애국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시민들에게도 미국을 대신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선도국가로서의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아베가 폐쇄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유럽은 반이민 정책과 극우세력의 약진으로 어두운 세계를 예고 중이다.
 
올해 2월9일부터 25일까지는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3월9일부터 18일까지는 패럴림픽이 열린다. 암울한 세계정치 속에서 이 기간 대한민국이 동아시아 문명에 기초한 보편주의적 가치와 철학을 세계시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 2016년 촛불혁명과 2019년 대한민국 100주년을 즈음해 보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로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한국이 새로운 흐름을 불러올 수 있다.
 
전환적 문명을 모색할 때 동아시아 문명의 '천하국가(天下國家)' 이론은 대한민국이 제시할 철학과 가치의 역사적 뿌리다. 서구 문명의 평화론이나 국제정치의 패권이론이 아닌 동아시아 문명에 기원을 둔 세계평화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학>과 <중용> 등 동아시아의 고전 속에 있다. <대학>은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국정운영 원리를 철학적 기초로 제시한다. 나아가 <중용>은 '천하국가론'으로 구체적인 동아시아 문명의 세계평화론을 말하고 있다. <중용> 20장에는 "무릇 천하국가를 위해 구경(九經)이 있다"고 가르친다. 국가 리더십의 9대 원칙은 '자신을 닦고, 어진 사람을 높이고, 가까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국정에 참여하는 정치인들을 공경하고, 정부 관료들을 내 몸과 같이 여기고, 서민들을 내 가족처럼 대하고, 세계의 능력 있는 기술자들을 오게 하고, 먼 나라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대하고, 여러 나라의 제후들을 품어 안는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원칙이 세계사 속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 오랜 세월 문명의 충돌과 갈등이 계속됐다. 예컨대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1500년 넘게 피의 보복과 전쟁으로 화해 불가능한 문명의 충돌을 불러왔다. 밀레니엄의 시작에 일어난 9·11 테러는 그 이후 이슬람국가의 출현,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는 테러리즘 그리고 중동의 평화에 위협을 낳고 있다.
 
21세기는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시대다. 동아시아 문명과 인도 문명, 인도네시아 문명은 경제적 성장보다 정신적 가치와 문명 간 화해와 협력에 대한 역할을 제대로 할 때야 세계시민들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명은 세계시민들로부터 유구한 역사 속에서 서구 문명에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을 받는다. 동아시아 문명 중에서도 한국만이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가 가능한 나라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의 패권주의나 일본 폐쇄성은 세계시민들로부터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2016년 촛불혁명까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주공화정을 발전시킨 한국이 새로운 세계 민주주의의 요람이 될 수 있다. 시진핑은 2050년에 중국을 세계 초일류국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그러나 그 목표는 보편주의가 아니라 중국 중심의 패권주의다. 패권주의로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인 '천하국가'의 민주주의에 근거한 세계평화론의 제시는 불가능하다.
 
21세기는 국력 경쟁을 넘어 지역 경제블록에 기반을 둔 6개의 문명권이 충돌하고 협력하는 시대다. 이 문명의 충돌에서 한국이 동아시아 문명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천하국가'의 세계평화론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준비로 2월 평창올림픽과 3월 패럴림픽에서 그 구체적인 제안들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