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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훈

(피플)"애플 집단소송, 소비자 대응모델로 정착하길"

아이폰 고의 성능 저하의혹 집단손해배상 소송 제기…"단체소송제도 도입 서둘러야"

2018-01-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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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아이폰의 고의 성능 저하에 대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지난 11일 애플을 상대로 법원에 집단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에 원고로 참여한 아이폰 소비자는 112명이며, 1인당 손해배상 청구액은 220만원이다. 이 단체는 18일 애플 본사 대표와 애플코리아 대표이사를 재물손괴죄·컴퓨터등이용업무방해죄·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했으며, 19일까지 추가로 신청한 소비자를 원고로 2차 소송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단체 외에도 다른 법무법인에서도 원고를 모집하는 등 애플에 대한 소송은 규모가 더 커질 전망이다. 소비자법률센터 소장이자 소비자주권시민회 집행위원으로서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평우 소속 정준호 변호사를 만나 이번 소송의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편집자주)
 
애플에 집단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계기는
 
외국 기업인 애플에서 제조해 국내에서만 수백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한 휴대폰의 사용 과정에서 고의적인 성능 저하 업데이트가 이뤄졌다. 책임자인 애플은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유상으로 배터리만을 교체해 주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관계부처에서는 성능 저하 여부에 관한 조사 절차도 제대로 진행하고 있지 않다. 결국, 소비자들의 피해는 소비자들 스스로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소비자 운동을 주로 하는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서 불가피하게 소송에 참여하게 됐다.
 
이번 소송 과정에서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주된 쟁점은 두 가지다. 성능 저하를 수반하는 업데이트가 진행된 사실은 애플에서도 인정했기 때문에 귀책사유 자체에 대한 입증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애플에서는 배터리 결함을 시정하면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성능 저하에 대한 책임 면책을 주장할 것으로 보이므로 그러한 항변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가 첫 번째 쟁점일 것이다. 다음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에게 인정될 수 있는 손해배상의 범위가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성능 저하로 인해 송금에 실패했다거나 하는 특별한 사정에 대해서는 애플에서 미리 알 수 없는 손해이기 때문에 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피해 입증 등 승소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의견도 있다
 
휴대폰 업데이트 과정에서 고의적인 성능 저하가 이뤄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굉장히 기술적인 지식이 수반돼야 입증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소비자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다만, 성능 저하를 수반하는 업데이트 자체에 대해서는 애플이 인정한 후 사과했기에 그 부분에 대한 입증은 이미 상당 부분 경감된 것으로 봐야 한다. 개별적인 피해 사례에 대한 입증 자료가 구비되는 것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휴대폰으로 작업을 하던 중에 발생한 피해 사례는 오히려 전산 기록이 충실히 남아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에 입증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이 부분과 관련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행 소비자보호법에 관계부처의 직권조사 권한이 명시돼 있음에도 이를 전혀 발동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소송이 우선'이기 때문에 관련 진상조사를 미루고 있다는 입장이 소개됐는데, 이는 전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이번 소송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앞으로 비슷한 유형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고, 그때마다 소액 피해자들의 집단적 대응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을 통해 소비자들의 대응 체계를 수립하는 데 하나의 모델을 정착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법무법인과 달리 실비만을 소비자에게 부담케 하는 방식으로서 시민단체가 소송에 참여한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법무법인에서는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끝나고 왜 소송으로 이어졌는지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을 수 있는데, 시민단체가 소송을 주도하면 피해자를 모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나 아쉬운 점을 제도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이는 소송을 진행하는 시민단체 입장에서도 제도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고, 소송을 맡기는 피해자 입장에서도 조금 더 연결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이번 소송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는 또 다른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확인해 소비자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는 데 반영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다.
 
소비자 권리를 위해 국회의 역할도 주장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소비자집단소송제도의 각 도입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다 보니 애플의 대응도 소극적이고, 민사소송 절차만 방어하면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등 관계부처가 소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현행 소비자보호법에서는 집단소송제도가 금융 분야에만 도입돼 있고, 소비자 시민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단체소송은 금지청구권 행사에만 국한돼 있다. 본 사안과 같은 시간이 흐른 뒤 밝혀진 고의적인 소비자 주권의 침해 행위에 대한 실효적인 회복 수단으로써의 배상 책임에 대한 단체소송제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2차 소송 등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후속 모집 절차를 통한 2차·3차 소송은 1차보다 모집 규모가 현격히 증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효율적인 소송 수행을 위해서 접수 시기와 원고 집단의 규모 등을 정할 생각이다. 예를 들어 법률센터 소속 변호사 중 책임변호사를 2명~3명씩 지정해 모집된 피해자단을 나눠 소를 제기하는 방법이 있고, 피해 유형별로 집단을 나눠 소를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번 달 중 모집된 피해자단의 규모와 피해 유형을 검토해 최종적으로 확정할 계획이다. 늦어도 2월 초에는 2차 소송이 착수될 예정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집행위원으로 느낀 점은
 
사설 법무법인에서 5일 만에 모집한 피해자만 25만명이 되는 대규모의 소비자 피해 사례가 발생했는데도 정부 당국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진행 중인 것이 없다. 외국 기업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나 일자리 피해도 크지 않은 사례다. 구제에 소극적일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다수의 국내 소비자들이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의 권리는 헌법상 권리이고 소비자기본법 등에서는 구체적으로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금번 사태만을 보더라도 이는 실효적으로 적용되는 권리는 아닌 것 같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필요한 이유다. 추상적인 가치 수호보다도 사소하게 이뤄지는 소비자의 권익 침해가 보다 시급할 수 있다. 가시적인 소비자 권리의 증대를 위해 노력하겠다.
 
1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준호(가운데) 변호사 등 관계자들이 애플 아이폰 고의 성능 조작 관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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