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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협

(사회책임)사회적 가치가 공공기관 경영평가 좌우한다

효율성과 공공성 조화한 경영평가 개편 가시화

2018-02-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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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최대 63점이 사회적 가치에 배당됐다. 지난해 12월 28일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제한적이고 형식적이던 ‘사회적 가치’ 항목의 배점을 확대하고, 항목을 5개 세부 지표로 구성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과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주관부처인 기재부가 사회적 가치 실현의 정책화를 시작한 것이다. 100점 만점에서 일반 경영관리와 기타 주요사업을 제외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평가하는 항목이 적게는 40점 많게는 63점을 차지하게 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방만 경영을 감시·정상화하고 공공기관의 목적인 공공성의 실현을 위해 시행된다. 효율성과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경영평가에서 공공성과 참여를 포함하는 평가로 전환하는 것이 개편 방안의 요지이다. 평가에 따라 부여된 등급은 성과급 지급과 기관장 인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평가 대상인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사회적 가치에 이목을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당장 지난 6일 대구시 중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의 의미와 대구 사회적경제 상생전략'을 논의하는 포럼이 열리는 등 공공기관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사회적 가치, 평가 배점 확대하고 5개 세부 지표로 구성
참여정부가 발의해 2007년부터 시행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은 1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현재의 틀을 유지했다. 당시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공운법의 목적을 “공공 경영의 합리성과 운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분류체계를 만들고 공공기관 지정에 대한 요건을 정하는 등 운영 전반을 담고 있는 만큼 그 역할이 컸다. 그간 이루어진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세계은행 보고서에서 우수사례로 소개되면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효율에 초점을 맞춘 기존 경영평가에 대한 반성과 지난해 국민적 지탄을 받은 공공기관 채용 비리 여파가 맞물리면서 정부는 공공기관의 평가의 변화를 서둘렀다. 지난해 12월 기재부는 ‘공공기관 평가제도 개편방안’ 발표를 통해 공공기관 본연의 목적인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 실현에 집중키로 한 것이다. ‘공공기관 평가제도 개편방안’은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 개편을 위한 공개토론회와 전문가토론회를 거쳐 완성됐다. 개편 방향은 ▲사회적 가치 실현 ▲자율·혁신 기반 맞춤형 평가 ▲참여·개방·소통 ▲책임·윤리경영으로 구분된다.
 
이후 기재부는 ‘2018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을 확정하고 개편방안을 그대로 반영했다. 사회적 가치 실현을 공공기관이 선도한다는 정부 목표에 따라 사회적 가치 평가 항목의 배점이 높아졌다. 또한 주요 항목인 경영관리의 하부 지표로 ‘사회적 가치 구현’을 지정해 5개의 지표로 그 구체성을 높였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경영 관리와 주요 사업이다. 경영관리의 하위 항목인 ‘경영전략·사회공헌’ 중에서도 상세 항목으로 분류됐던 ‘사회적 책임’이 2018년도 개편안에서는 ‘사회적 가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경영관리의 6개 하위 항목 중 하나를 차지(배점 20~22점)한 것만 보더라도 그 비중이 크게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포괄적인 평가만 이루어졌던 주요사업에 ‘사회적 가치 실현 사업’ 항목이 신설됐다. 공기업에서는 10~15점, 준정부기관에서는 30~35점을 차지하게 됐다. 이에 따라 새로운 평가지표에서 신설된 ‘사회적 가치 구현’과 ‘사회적 가치 실현 사업’ 외에 기존 지표의 사회적 가치 성격 항목까지 포함한 전체 사회적 가치 지표의 비중은 공기업의 경우에는 100점 만점에 40~45점, 준정부기관일 경우에는 58~63점이 된다. 공기업은 경영관리, 준정부기관은 주요사업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구조다.
 
‘사회적 가치 실현’ 항목은 5대 지표인 ▲일자리 창출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 ▲안전 및 환경 ▲상생·협력 및 지역발전 ▲윤리경영으로 구성됐다. ‘일자리 가점’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원과 현원 차이 관리, 민간일자리 창출 등을 보여주는 ‘일자리 창출’이란 세부 지표로 변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대 지표 중 일자리 창출이 차지하는 배점이 7점으로 가장 높다.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 지표는 다양한 인재를 고용하자는 취지에서 고졸자, 지역인재, 여성관리자 확대 등을 평가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두됐던 ‘안전’ 문제도 사회적 가치 구현에 포함된다. 에너지 절약 등을 선도한다는 측면에서 ‘환경’도 빠지지 않았다. ‘상생·협력 및 지역발전’은 가치라는 말에 부합하게 지역경제 활성화를 평가하는 동시에 상생에 초점을 맞춘다.
 
개편 방안이 자율을 강조하는 만큼 ‘윤리 경영’ 항목이 신설했다. ‘윤리 경영’은 윤리경영체계와 경영투명성 등을 평가하는 지표이다. ‘책임·윤리 경영’은 개편 방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년 불거진 채용비리와 같은 중대한 사회적 책무 위반 또는 국가경제 공헌 시 공운위 의결을 통해 평과등급이나 성과급이 조정된다.
 
다섯 가지 지표로 ‘사회적 가치’를 확정한 것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역할을 정의함으로써 고용, 환경, 안전, 상생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사회 공헌의 일부분으로 전략기획과 함께 5점밖에 배당이 되지 않았던 ‘사회적 책임’이라는 용어가 다소 추상적이고 중요도가 확연히 떨어졌던 것에 비해 사회적 가치 항목의 배당을 대폭 확대하고, 세부 지표로 공공기관 스스로 ‘사회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변화가 돋보인다. 국정과제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으로 정의된 만큼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기업, 시민사회, 정부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조직이 이러한 구체성을 갖추기를 기대한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각 공공기관은 특성에 따라 총점 범위 내에서 지표 배점을 선택할 수 있다. 평가항목별로 기준점수를 부여하고 ±50% 내에서 가감하여 기관이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폐쇄적인 평가체제를 시민과 사회단체 참여를 포함하는 참여·개방형으로 전환한 것도 특징이다. 국민 참여에 대한 평가항목을 신설해 시민평가단이 직접 사회적 가치 실현 우수사례를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사회적 책임에서 사회적 가치로
‘사회적 책임’ 항목이 ‘사회적 가치’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개념에서 엿볼 수 있듯 ‘책임’이란 경제, 환경, 사회 등의 영역에서 윤리적 기준을 지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공생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가치는 비교적 최근인 2011년에 마이클 포터 교수가 제안한 공유가치창출(CSV)에서 나온 개념으로, 사회적 책임 활동이 기업 자체에도 새로운 생산 기회로 다가오는 것을 말한다. CSV가 CSR 개념 내에서 나온 용어이긴 하지만 상생을 통한 가치 창출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사회책임 관련 용어가 확립되고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이를 탐구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만큼, 문 정부는 공공기관부터 사회적 책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31일에 열린 '제2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공기관은 공공서비스 제공과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사회적 가치’ 개념은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사회적가치기본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14년 문재인 대통령이 최초 발의한 사회적가치기본법은 공공기관의 정책수행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노동, 환경, 복지, 윤리적 생산 등)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이 법안은 경제 공공기관의 조달, 개발, 위탁, 민간지원 사업에 있어 사회적 가치의 반영을 의무화하고, 정부 및 공공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부터 효율과 이윤에 치우친 원칙보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염두에 두자는 것이다.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 기업의 사회책임을 촉진하고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포용적 성장’의 연장선에 있던 사회적가치기본법은 지난해 10월 박광온 의원 등에 의해 재발의 되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은 “공공기관에 사회적 가치 개념이 확산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만, 자칫 사회적 가치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책임의 본래적 의미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정책이 실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충호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은 “‘사회적 가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2010년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정한 사회책임에 관한 국제표준(ISO26000)에 대한 학습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ISO26000은 조직의 미션과 비전에 상응하는 사회책임을 규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책임의 원칙을 실행 가능한 방침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정부, 기업, 시민단체,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대표들이 국제적인 의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탐구한 과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효율성과 공공성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공기업에는 특히 이러한 이해가 필수적일 것이다.
 
강 이사장은 “표피적인 이해나 형식적인 실천 노력으로는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이라며 “공공기관이 하루빨리 CSR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진솔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작년 12월 2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개편방안 합동브리핑'에서 김용진 기획재정부 제2차관(가운데)이 발언을 하고 있다.
서지윤 KSRN 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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