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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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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을 바라보며.

2018-04-05 10:52

조회수 :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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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수만명이 희생된 사건. 나는 이 사건을 고등학교때 남한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반공 노선의 신호탄을 보여준 사건으로 배웠다.
 
하지만 실제 이 사건이 현 시점을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얼마나 가슴아픈 사건인지는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이후 대학에 입학한 후 어머니가 해준 말씀. 외가쪽의 아픈 기록. 학생회 활동을 한다고 말했을때다. 
 
외할아버지는 3형제 중 막내였다. 두명의 형이 공부도 잘했고 나름 동네에서 인정받는 분이셨단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났고, 두명의 형은 모두 사라졌다. 그당시 공부를 많이 했던 분들의 상당수가 좌익 활동을 했단다.
 
한국전쟁 시 두명의 형은 좌익 활동을 하다 처형된 것.(나중에 알게됐지만 한국전쟁시 보도연맹 사건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 이후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두 형의 자녀들은 모두 우리할아버지가 키웠다고 한다. 정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집안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렇다. 우리 집안도 과거 이승만 정권의 반공사상에 희생된 것이다. 
 
새내기 첫 농활을 가서 경산코발트 광산을 들렀다. 어머니 고향과 멀지 않은 곳이다. 이 곳은 한국전쟁때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곳곳에 희생된 분들의 뼈가 보인다.
 
마음이 이상했다. 혹시나. 여기가.
 
제주 4.3 사건이 발생한 지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반성해야할 이유. 곰곰히 생각해봤으면 한다.
 
 
 
 
 
2005년 4월 대학 첫 농활. 사진 맨 왼쪽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나다.
 
  • 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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