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이우찬

(사회적기업가를말하다)김태규 비앤유주식회사 대표

페인트·가죽공장·전자상가 등 안 해본 일 없어…광고 현수막 제조 '비앤유' 대표로 인생 2막 시작

2018-04-19 17:49

조회수 : 1,726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2015년 11월 서울시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비앤유주식회사는 광고 출력 현수막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사무실에는 12대의 플로터 프린터(대형 프린터)가 자리 잡고 있다. 12명의 직원 중 6명은 주로 20~30대의 광고·이미지 디자이너들이고, 6명은 50~60대 사회경제적 취약층들이다. 김태규(41) 비앤유주식회사 대표는 "제조업을 하는 우리 회사에 직원들은 꼭 필요한 존재"라며 "사회경제적 일자리를 만들고 싶고, 직원들과 퇴근 후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기업을 꿈꾼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더 많은 사회적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오늘도 분주히 땀 흘리고 있다.


 





서울 가산동에 있는 비앤유주식회사 사무실. 비앤유주식회사는 광고 현수막을 제작하는 서울시예비사회적기업이다. 사진=뉴스토마토






김태규 비앤유주식회사 대표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경험했다. 힘들고 어두운 현장 일선에서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김 대표는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경기 안양에 있는 페인트 공장에 취업하며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과자 봉지 인쇄에 필요한 잉크를 제조하는 작업이었다. 1년6개월가량 일한 그는 가죽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3년 동안 근무하면서 일주일에 3차례 야근을 했다. 자연 그대로의 소 표피를 약품에 12시간 이상 넣었다 빼는 걸 반복하는 고된 일이었다. 염산·황산·개미산 등을 다루는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피부도 이때 안 좋아졌다. 그는 "공장장이 그만 두지 말라고 붙잡았는데,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가죽공장을 떠난 김 대표는 용산 전자상가로 옮겨 컴퓨터와 그 주변기기 등을 팔았다. 고객을 붙잡아 물건을 파는 영업이었다. 없는 제품을 고객이 찾으면 가만 있지 않고 다른 곳에서 물건을 떼어와 파는 집념이 있었다.


 



페인트 공장, 가죽공장, 용산 전자상가 등을 거치면서 그의 20대가 꽉 채워졌다. 김 대표가 고단함만으로 20대를 보낸 것은 아니다. 그는 "가죽공장 일이 정말 힘들었지만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고 이후 모든 일에 다가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돌아봤다. 용산에서는 영업의 본질을 배웠다. "영업은 제품, 상품만 파는 게 아니고 자신의 이미지를 함께 파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이후 그는 모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겸손함을 배웠다. 영업을 하면서 차곡차곡 쌓인 자신만의 인적 네트워크 관리법도 있다. 그는 "전화번호는 한 번 저장하면 지우지 않는다"며 "휴대폰을 바꿀 때에도 문자 메시지까지 같이 저장해 그 사람과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휴대전화에는 8000여개의 휴대 번호가 저장돼있다. 그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였다"고 말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김 대표는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 구매대행 업체와 거래하는 한 회사에서 10년간 일했다. 월 매출 1억원의 이 회사는 100억원으로 덩치가 커졌고 김 대표는 이곳에서 팀장으로 대기업 못지 않은 연봉을 받았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사람한테 진심을 보여주고 자신의 이미지, 브랜드를 판매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1년 뒤, 10년 뒤 돌고돌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사람은 늘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에게선 삶과 사람에 대한 소중함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직장 생활 스트레스로 방황하고 자포자기했던 그는 큰 병을 앓았고 이후 병을 이겨내며 생각을 바로 잡았다. 그는 "죽기 전에는 하고 싶은 걸 다 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며 "아프다고 해서 위안 받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아픈 것을 잘 이겨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자주 한다"고 했다. 그는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게 너무 아깝다"며 "지금 나이가 아니면 사회적기업을 하기 어렵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고교 졸업 후 20년 가까이 쉼 없이 달려온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은 지난해 7월 비앤유주식회사 대표가 되면서 이제 '인생 2막'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 대표는 지인이었던 비앤유주식회사 전임 대표에게 사회적기업 인증을 신청했고, 이후 전임 대표가 비앤유주식회사 경영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아예 회사를 인수했다.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으로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는 있지만 김 대표는 자신의 명함에 '사회적기업'이라고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회적기업' 프레임에 대한 왠지 모를 편견이 싫어서다. 그는 "비앤유주식회사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그냥 평범한 회사"라며 "우리가 제작한 현수막이 KT의 전국 4000여개 매장에 쫙 깔리는 것을 봤을 때 뿌듯했다"고 웃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그의 철학은 뚜렷하고 예리했다. "말라리아 감염을 막기 위해 집집마다 모기장을 기부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모기장을 기부할 돈으로 공장을 지어서 지역사회 스스로 사람을 뽑아 모기장을 생산해 판매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나을까. 어느 선택지가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걸까. 전자의 기부가 눈앞에 보이는 곳에만 도움의 손길이 뻗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역 주민들이 공장도 만들고 운영해 더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고 적극적으로 모기장을 파는 구조를 만드는 거다. 비앤유주식회사는 사회적기업으로 그런 사회를 만드는 걸 꿈꾼다."


 


회사 운영의 방침은 단순하다. 꾸미지 않는, '인간미' 있는 회사를 꿈꾼다. 보고서를 받아 보는 회장님 같은 대표가 아닌, 퇴근 후 소주 한 잔 마실 수 있는 동료같은 대표가 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김 대표는 "내가 하기 싫은 건 직원한테도 시키지 않는다"며 "대신 대안을 찾아오라고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6시가 되면 모두 퇴근하라고 한다. 출근은 저보다 일찍 오면 된다"고 했다.


 


김 대표의 꿈은 사람, 직원을 향하고 있다. 오는 10월 홍콩에서 열리는 전자박람회에 2명가량을 보낼 계획이다. 김 대표는 "디자이너 1명, 취약계층 1명을 견학하게 할 생각"이라며 "LED, 3D 프린터 등 기술을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보고 느끼고 오면 직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앤유주식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6억원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부채도 없다. 김 대표는 "올해 매출 50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직원 2~3명가량을 취약층 일자리로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목표를 달성하면 50억원 달성 기념 자축 파티를 하고 싶다"며 "직원 휴가, 포상, 현물 보상 등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일자리가 간절한 이들을 향해 비앤유주식회사 채용의 문은 열려 있다. 학력, 경력 등이 즐비하게 기록된 이력서를 꼼꼼하게 검토하기보다는 함께 오래 갈 사람을 찾고 있다. 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원하시면 오십시오, 재밌고 즐겁게, 오래 일할 수 있는 분을 비앤유주식회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태규 비앤유주식회사 대표. 사진=뉴스토마토




  • 이우찬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