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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토마토칼럼)갑질로 흥한자 갑질로 망한다

2018-04-23 06:00

조회수 : 5,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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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위기를 맞고 있다. 막내인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부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시작이었지만, 대한항공 이사 등기 문제와 어머니 이명희씨의 또다른 갑질 폭행사실이 잇따르면서 사건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가가 해외 각지에서 사들인 명품이 법령에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프리패스’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형사책임 추궁이 불가피해졌다. 엄격해야 할 관세망에 구멍을 내놓은 세관 등 관세 당국은 내부제보자들이 언론의 입을 빌려 목소리를 내자 서둘러 선긋기에 들어갔다. 주말 관세포탈 혐의 등으로 사태의 실마리를 제공한 조 전무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진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2017년 7월13일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은 피고인 신분으로, 몸소 해외로 나가 쇼핑해 온 물건을 직원들 손에 들려 국내로 들여 보냈다. 당시 조 사장은 형사 사건으로 기소돼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었는데, 혐의는 다름 아닌 ‘갑질 끝판왕’인 ‘땅콩회항’ 사건(항공보안법 등)이었다. 2015년 1월 구속기소된 조 전 사장은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항소해 그해 5월22일 풀려났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죄가 무죄로 판단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 사장이 해외로 나간 건 석방 후 채 두 달이 안 돼서다. 물론, 현행법상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 피고인의 출국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중해야 할 상황에 있는 조 사장의 외유는 당시에도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지금에서야 드러난 사실이지만 자신이 구입한 물건들을 아무렇지 않게 직원들을 통해 국내로 들여보낸 것은 또 다른 갑질로, 납득이 어렵다.
 
이쯤 되면 항소심 재판부가 "조 전 부사장이 깊은 반성을 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 집행을 2년간 유예한다"고 밝힌 양형이유가 무색해진다. 국민이 사법부 판단을 불신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 사장이 대한항공 직원들을 시켜 해외 물품들을 반입할 때, 다른 모 대기업 부회장님도 비슷한 방법으로 관세당국의 눈을 피해 자신들의 수하물을 국내로 들여보냈다. 대기업 오너들이 이럴진데, 그들을 감시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국가 고위관료 등은 오죽했을까.
 
이러는 동안 한쪽에서는 항공기내 일등석 승객이 버리고 간 고가의 외국산 화장품 샘플을 기내 밖으로들고 나온 청소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그 화장품 샘플은 대한항공이 승객에게 나눠 준 것으로, 중고장터에서 1만원 안팎이면 산다고 한다. 이 노동자를 관리해 온 대한항공 협력체는 해고통지서에 "회사의 기강을 확고히 해 다른 직원에게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이 회사는 한술 더 떠 그 다음날 사내 공지를 통해 "기내 서비스물품을 반출하는 행위 절대 엄금"이라며 "대한항공 및 세관이 감시하고 있으니 위반시 파면 조치할 방침"이라고 엄포까지 놓았다. 소가 웃을 일이다.
 
22일 조현아·조현민 두 사람이 현직에서 모두 물러난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사태를 무마하기는 역부족이다. 이번 사태는 수십년간 도구로 이용됐던 내부직원들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갖은 갑질을 면전에서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회장님·사모님들이 떠맡긴 해외 명품을 깨질세라 품에 안고 항공기에 오른 그들은 오죽 마음이 아렸을까. 
 
관세청이 나서고 검찰이 나선다고 해결될 이번 문제가 아니다. ‘갑’들의 횡포와 담력은 이미 사법부를 넘어선지 오래다. 스스로 통렬하게 깨우치고 반성하지 못하면 갑질은 또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갑질로 흥한 자는 갑질로 망한다’는 교훈이 사회적으로 분명하게 각인돼야 한다. 진정한 재계의 적폐청산은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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