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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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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각성한 네오처럼, 세상 모든 것을 재테크 기호로 풀어 전하겠습니다....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해서 막 쓴 잡설

이게 다 날씨탓이다

2018-05-06 15:04

조회수 :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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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랬습니다.(나이 들면 옛날얘기만 한다던데, 인정합니다ㅜㅜ)
 
이십대 후반부터 마흔 넘을 즈음까지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여행이라고 거창하게 이름붙일 것까지도 없고 그냥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습니다. 대학생 때는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부터 종점까지, 아니면 그냥 한강 가서 무작정 걷다가 그날 눈에 띄는 다리 건너기, 잘 모르는 동네 가서 골목길 헤매기 같은 것. 그러다 가끔 날잡아 기차 타고 강원도 가서 인적 뜸한 관광지를 돌아다닌다거나.

동네에서 홀쭉하고 기다란 낯선 녀석이 혼자 걸어다니는 모습을 본 주민들의 표정은 경계심 또는 "쟤 뭐지" 이런 느낌? 그런 시선을 피하느라 더 사람이 뜸한 곳으로 찾아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엔가 변곡점이 찾아옵니다.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아닌데, 그 전엔 그런 욕심도 없었는데, DSLR이란 놈이 눈에 박혔던 거죠. 그 전까지는 대학 1년 때 사진학 듣는다는 핑계로 산 미놀타의 SLR 보급기종 X-300을 들고다녔는데 DSLR은 필름없이 디지털로 필름 비슷한 사진을 구현해 내는 것이 놀랍더군요.

당시 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애정한 캐논의 텐디(10D)는 못 사고, 그 아래 기종 중에 색감이 진득한 D60을 중고로 질렀습니다. 여기에 서드파티 탐론 24-70mm 렌즈를 새 걸로 물리고 가방 하나 사니까 거금 200만원이 사라지더군요.

DSLR을 갖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서도 "쟤 뭐야" 하는 시선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식당 같은 데 가면 간혹 물어왔습니다. "사진작가세요?" 카메라를 멘, 사진을 찍는 저를 본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홀로 여행객이라는 낯섦을 카메라 하나가 바꿔주더군요.

이때부터 5~6년 정도는 정말 왕성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여행동호회에 가입해서 함께 어울리기도 했는데 수십명 회원들과 가는 여행에서 공식 사진가처럼 여겨지기도 했죠.

몇년 후 DSLR을 든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다른 데로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필름으로 되돌아오게 된 거죠. 디지털의 한계, 후보정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필름의 감성. DSLR의 10분의 1 가격밖에 안 되는 구닥다리 카메라로 만들어내는 (남이 찍은) 결과물에 압도돼 필름카메라로 넘어오게 됩니다.

필름은 늪입니다. 디지털은 바디와 렌즈의 조합, 필터 정도인데, 필름카메라는 여기에 '필름'이라는 변수가 하나 더 붙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비유하자면, 10 곱하기 20의 조합만 생각하면 됐는데, 필름은 10x20x20입니다. 만약에 찍은 사진을 필름스캐너로 스캔해 디지털파일로 변환하는 작업까지 직접 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기종을 바꾸어 가며, SLR과 기계식과 RF를 넘나들며, 네가와 슬라이드와 흑백을 오가며 늪에 빠져 허우적댔습니다. 국내 중고장터를 넘어 이베이를 뒤져 공수했습니다. 그나마 중형카메라에까지 발을 들여놓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노구를 모셔온 탓에 자주 앓으셔서 들인 수리비만 얼마인지...
 
사십대로 들어서면서 다시 변곡점이 찾아옵니다. 바깥으로 나가는 활동량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카메라들은 선반위에서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어쩌다 한두 컷씩 찍은 사진도 필름 한 롤을 채우느라 현상이 밀리고 밀려 여름에 찍은 사진을 겨울에 확인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때가 왔음을 느꼈죠. 십여 대 기종을 계속 바꿔가며 쓰다가 마지막까지 갖고 있던 세 개의 카메라를 모두 내다 팔았습니다. 정말 찍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 넘쳐흐를 정도가 되면 다시 들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로도 ‘지금 그 카메라가 있으면 좋을 텐데’하는 순간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하지만 다시 카메라를 사들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폰카로 그 순간의 기억만 담아두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 사이 저는 나이를 먹었습니다. 제 눈도 그렇구요. 제겐 카메라가 없지만 취재 때문에 회사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가 있는데 시야가 흐릿해지더군요. 노안을 피할 수는 없겠죠. 디옵터로 조정해도 멀쩡한 눈과는 달랐습니다. 핀이 나간 사진이 많았습니다. 초점이 맞았는지 어떤지를 ‘삑삑’ DSLR이 알려주는 소리만 듣고 누르는데 당연한 일이겠죠.

그러다 뭔 마음이 들었는지 작년 말쯤 콘탁스 SLR 한 대를 샀습니다. 강원도로 떠나 딱 두 롤을 담았습니다. 돌아와 곧바로 다시 내놓았습니다. 가득 차오르지 않았는데 욕심을 냈거나 어쩌면 이제는 차오를 수 없게 된 건지도 모르겠죠. 그때 찍은 필름은 아직 현상을 맡기지 않은 채 책상서랍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무슨 사진 전문가나 준전문가 쯤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전혀 아닙니다. 그냥 찍는 순간이 즐거운, 피사체를 파인더 안에 놓고 제 마음대로 연출해 보는 그 순간을 즐길 뿐입니다. 결과물은 형편없어요.
 
낼모레 오십줄에 아직도 싱글인 제가 삼사십대를 지나오는 동안 외로움을 덜 느끼게 해준 (친구 빼고) 두 가지가 있는데 <무한도전>과 사진입니다. 이제는 둘 다 없군요.
 
이런 걸 쓰려고 시작한 글이 아닌데, 엉뚱한 데로 샜습니다. (1박2일 속초 다녀오는 길에 한 생각을 쓰려고 했는데 왜때문에!) 날씨 탓이겠거니 슬쩍 발을 빼겠습니다. 별다방 창밖으로 비가 예쁘게도 내립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 김창경

<매트릭스>의 각성한 네오처럼, 세상 모든 것을 재테크 기호로 풀어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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