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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법의 도움 필요하세요? 마을변호사가 있습니다"

법률사무소 '휴먼' 손준호, 환경운동가에서 변호사로…성공회대 출신 1호 변호사

2018-05-2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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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수임료가 만만치 않아 변호사를 선임하기는 쉽지 않다. 마을변호사는 매달 한두 번 동주민센터를 방문해 사전 예약한 주민들에게 법률상담을 해준다. 법률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이 제도는 지난 2013년 6월 법무부, 행정자치부(행정안전부), 대한변호사협회의 협업으로 도입됐다. 지난해 12월 법무부는 주로 읍·면 지역에 마을변호사를 배정했으나, 앞으로는 전국 66개 동 지역에도 54명의 마을변호사를 새로 배정하기로 했다. 마을변호사 제도가 올해 6월 도입 5주년을 맞는다. 일선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법률사무소 ‘휴먼’ 손준호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4년 성공회대 출신 첫 변호사가 된 그해부터 마을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5년차의 주니어 변호사다.
 
예전에 서울 동작FM에서 생활법률 상담코너를 진행하고, 현재 성동구 행당1동 마을변호사를 맡는 등 경력을 보면 공익활동에 관심이 많다.
 
동작FM은 동작구의 마을공동체 라디오인데 사무국장이 친한 친구다. 거기서 진행하는 라디오의 한 코너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있었고, 시민의 삶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매달 1번씩 1년간 생활법률 상담을 진행했다. 지금은 라디오 방송은 하지 않고 동작FM 감사를 맡고 있다. 마을변호사는 서울시 공익변호사단에서 진행하는 공익상담 프로그램인데 한 달에 한 번 지정된 동사무소를 찾아가 2시간 정도 주민들에게 법률상담을 해드린다. 동작FM 이나 서울시 마을변호사 모두 공익활동인데, 내가 처음 변호사가 되고자 했던 이유를 생각하면서 참여했다.
  
마을변호사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동네에 나가 무료 생활법률 상담을 하면 정말 다양한 분들이 오신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상담은 상속 문의를 위해서 오신 한 할아버지였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한 중년의 여성분과 함께 상담을 오셨다. 자신이 가족도 없고 친인척과도 왕래가 없이 힘들게 사는데, 이웃인 그 여성분께서 자신을 종종 챙겨주셨고 자신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러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죽었을 때 장례비용으로 전 재산인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그 여성분께 상속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할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있자니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먹먹한 마음이었다. 또 옆에서 사람 좋은 얼굴로 조용히 앉아 계시던 그 여성분에게도 감사했다. 그래서 정성껏 상담을 해드리고 유언장 작성방법에 관해 알려드렸다. 상담을 마친 후 할아버지께서 연신 감사하다고 얘기하시면서 평소 말을 많이 할 텐데 이게 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목캔디를 주고가셨다.
 
법률사무소 휴먼 손준호 변호사. 사진/법률사무소 휴먼 제공

환경운동 출신으로 알고 있다. 왜 변호사가 됐나.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하면서 시민사회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에 녹색연합이라는 환경단체에서 1년간 환경운동을 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기후변화와 관련된 세미나, 자전거순례 등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행사들을 직접 기획하면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일들을 재미있게 했다. 시민단체에서의 일 자체는 즐거웠고 적성도 맞았으나, 당시 시민단체에서 주는 급여 수준이 너무 형편없었다. 지금은 좀 나아지긴 했으나 10년 전만 해도 시민활동가들이 소위 열정페이로 일했다. 그래서 당시 내 눈엔 시민활동가가 지속가능한 직업으로 보이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회운동도 활발히 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로스쿨이 눈에 들어왔다. 변호사가 되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회운동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소속된 법률사무소 이름을 보면 추구하는 방향이 보인다. 어떤 계기로 ‘휴먼’에 합류하게 됐는지
 
로스쿨에는 인권법연구회라는 학내모임이 있어서 진보적인 성향의 학생들이 모여서 인권에 대해서 고민을 나누고 관련된 활동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인권법연구회 소속이었고,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가 된 뒤 거기서 친했던 선배들을 만나게 됐다. 선배 변호사들이 법률사무소 휴먼에서 함께 뭉쳐서 일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휴먼에 들어가게 됐다. 휴먼에는 5명의 변호사가 있는데 각자의 성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진보적 가치는 공유하고 있다. 예컨대 모두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원이다. 또 휴먼에서 조금씩 돈을 걷어 공익소송을 지원하기도 하고, 공익단체에 기부도 한다. 우리 법률사무소가 공익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곳은 아니지만, 다들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야의 공익활동을 하고 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의뢰인들의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매번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으로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을 변호해서 무죄판결을 받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경찰과 검찰의 두 단계를 거쳐서 기소된 사건인 만큼 유죄 성립의 논리와 증거가 다 갖춰져 있다. 그것을 뒤집고 무죄판결을 받아야 한다. 내가 맡았던 사건은 명예훼손 사건이었다. 의뢰인이 어느 단체의 징계위원장으로 있었는데 데이트폭력 건으로 제소된 사건을 조사하여 징계대상자의 이름을 실명으로 기재하여 징계결정문을 올렸다. 그러자 그 징계 대상자가 의뢰인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했다. 고소인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징계위원들을 모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을 또 개별적으로 형사 고소한 사건이었다. 처벌 받아야할 사람은 그 사람인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처벌받을 상황에 놓이자 피해자들이나 징계위원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각종 증거 자료들을 정리해서 의견서를 제출하고, 증인신문도 4명이나 하면서 검사와 공방을 주고받았다. 판사가 결국 우리 쪽 손을 들어주면서 무죄판결이 났다. 판결문을 보니 우리측 주장을 거의 받아들였고 검사는 항소도 안했다. 그날은 정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법률사무소 휴먼 손준호 변호사는 지난 2016년 세월호 참사 규명을 요구하며 24시간 릴레이 단식에 참여했다.  손 변호사가 단식에 동참하며 소셜네트워크(SNS)에 올린 사진.

가장 후회되고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마도 개업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 것 같다. 사건 수임이 생각보다 안돼 사무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개업 초반이 힘든 건 당연하지만 당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고, 경험도 미숙한 일들이 겹치면서 힘들었다. 당시에는 '괜히 변호사가 됐나', '괜히 개업을 했나' 이런저런 생각들도 많이 했다. 그래도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사건을 의뢰하고 있고, 잘 해결해 드리고 있다. 소송결과가 좋은 편이라 주변에서 소개를 많이 해주시는 것 같다.
 
맡았던 소송 중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소송은
 
모든 소송들이 의미가 있지만, 국립대학 도서관 개방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이 가장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다. 시민단체를 대리하여 공익소송으로 진행했고, 국립대학 도서관을 국민들에게 개방하지 않는 공권력에 대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을 했다. 가장 최상위의 법인 헌법을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 교육받을 권리, 평등권 등을 지키고자 했던 소송이었는데 헌법소원을 처음으로 해봤다. 많은 변호사들이 평생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송을 못해보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난 운이 좋았다. 그런 기회를 얻어서 시민단체와 기자회견도 하고 언론 인터뷰도 하는 등 1년여가 지나서 결론이 났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변호사가 되고자 했던 초심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소송이었다.
 
성공회대 출신 1호 변호사라고 들었다. 전공도 법학이 아닌 사회과학이다. 변호사를 준비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어려움이 많았다. 로스쿨에 가서야 처음으로 법학 서적을 봤다. 로스쿨 3년 내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매진했다. 졸업 직후 치르는 변호사자격시험도 일주일 동안 치러져 엄청난 압박감을 받는다. 다시 그 과정을 보내라고 한다면 다른 직업을 생각할 것 같다. 그 정도로 쉽지 않았다. 다만 사회과학 전공자들은 딱딱한 글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텍스트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는 않았다. 다행이 한 번에 변호사자격시험에 합격했다.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 목표를 이루고자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비법학 전공자들도 얼마든지 도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로 5년차다. 5년, 10년, 20년 뒤에는 어떤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나.
 
해가 거듭될수록 능력 있는 해결사, 인간적인 해결사가 되고 싶다. 사람들이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안고 나를 찾아온다. 이러한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또 한편으로는 의뢰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인간적인 변호사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의뢰인의 아픔과 눈물에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루하루 그런 변호사를 꿈꾸며 살겠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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