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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권익도의 밴드유랑)'청춘 원두' 갈아 내린 이지형표 '바리스타 음악'

2018-06-08 08:50

조회수 : 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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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평소 즐겨 찾는 카페가 있으신지요?”
“뭐 그렇다기 보단.. 커피를 자주 찾는 편이어서 아무 데나 잘 가요. 눈에 딱 띄는 곳으로요!(웃음)”
 
내심 그 만의 ‘카페 아지트’를 소개 받는 여정이 될 거라 기대했다. ‘커피 뮤지션’이란 주관적 인상이 뇌 속 깊이 똬리를 틀고 있던 탓이다. 까다롭게 카페의 레벨을 나누고 원두의 원산지를 평할 것 같던 그에게서 예상 외로 무던한 대답이 돌아온다. “집에선 맥심 커피를 통으로 사다 놓고 그냥 뜨거운 물 부어 끓여 먹는걸요. 사실 기준이 많이 널널한 편이에요.”

인터뷰 장소로 “‘아무 카페’여도 괜찮을 것 같다”던 싱어송라이터 이지형. 그는 차가운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으로 커피를 내려 먹는 순백의 ‘커피 애호가’다. 전문가적 식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애써 커피나 카페를 분석하거나 평가하려 하지는 않는다. 지난 5일 상수동의 어느 카페에서 만난 그는 “(커피와 카페는) 혼자 만의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매개체’의 의미가 더 크다. 작업하기 전이나 라디오 생방가기 전, 아니면 멍 때릴 때 마다 찾곤 한다”며 밝게 웃었다.
 
“가을 즈음에는 ‘의식’처럼 내려 먹긴 해요. 원두를 사서 직접 로스팅하고, 갈고, 물을 끓이고…날씨가 좋아 5분도 안 되는 짧은 의식을 하기에 좋거든요. 그때 빼고는 평소 아무 커피나, 아무 카페나 다 좋아하는 편이에요! 이 곳도 오늘 처음 와본 곳인데… 괜찮네요!”
 
20년에 가까운 그의 음악 생활에서 커피는 일종의 ‘미장센’이었다. 한참 커피에 빠져 있던 무렵에는 아예 앨범 콘셉트를 커피로 정하기도 했고 ‘Tea Party’나 ‘더 홈’ 등 공연에서도 일상소품 같은 용도로 활용했다.
 
“(음악에서) 커피가 갖는 의미요? 사실 별로 없어요. 마치 취미로 게임을 하는 뮤지션이라면 노랫말에 게임 관련 암호나 복선을 자주 깔지 않을까요?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제 일상을 관통해 가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자주 음악 소재로 활용하는 것 같아요!”

2006년 1집 ‘라디오 데이즈(Radio Dayz)’로 솔로로 데뷔한 그는 12년여 동안 정규 3장과 그에 준하는 소품집 3장을 냈다. 정규가 진지한 ‘내면’의 이야기라면 소품집은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풀어낸 ‘세상과 너’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청춘을 표상하는 노랫말들은 커피라는 소재를 배경으로 은은하게 우러난다. 자아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보며 우수에 젖고, 저릿한 이별에 ‘괜찮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혹은 드넓은 세상에서 꿈을 찾는 두근거림의 여정 곳곳에서. ‘청춘’이란 원두 한 알, 한 알을 정성스레 갈아 내린 이지형표 ‘바리스타 음악’이다.
 
“소재나 작업 방식이 다를 뿐이지 어쨌든 모두 제 이야기라 생각해요. 현미경처럼 순간을 보고 그때의 감정을 표현한 경우가 많죠. 정규의 ‘나’와 소품집의 ‘너’를 바꾸면 똑같은 노래일 수도 있겠네, 생각도 하고요. 목소리도 저 인거 잖아요. 모아 놓고 보면 20대부터 이어져 온 영락 없는 제 이야기죠 뭐.(웃음)”

앨범을 낼 때마다 그 때, 그 순간의 이지형이 있었다. 솔로 이전 1990년대 밴드 ‘Weeper’로 활동할 무렵에는 커트 코베인을 보고 무조건적인 저항과 분노를 얼터너티브 록으로 표현했고, 솔로부터는 포크로 장르를 전향해 자신,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그려냈다.
 
“Weeper로 활동할 때는 법적으로는 성년이었지만 인격과 내면은 완벽한 성인이 아니던 시기였어요. 기타를 부수거나 목소리를 긁어대는 MTV 속 록커들을 보고 무조건적으로 따라 했던 거죠. 그러다 어느 날 집에서 통기타 치면서 편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편한 거에요. 그때부터 홍대 메인스트림과는 반대의 길을 갔었죠. 1집이 나왔을 때 이승환 형의 말을 듣고 힘이 났어요. 90년 이전의 솔로 가수 명맥이 다시 이어졌다며 칭찬해주셨거든요.”
 
솔로 활동으로 이름이 차츰 알려질 무렵에는 토이 6집의 ‘뜨거운 안녕’ 객원 보컬로도 참여했다. 슬프고 아릿한 ‘청춘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밝되 아련한 그의 보컬 색깔과 찰떡처럼 잘 맞아 떨어졌다.
 
“이지형의 색깔을 ‘그거’라고 표현해 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아릿하고 슬픈데 또 밝고 신나는 그런 느낌이요. 언니네 이발관의 ‘울면서 달리기’란 노래 제목처럼요! 하하. 제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도 ‘런닝맨’, ‘산책’ 같은 신나는데 정서는 저릿한 그런 노래를 많이 찾으세요. 그게 제 색인가 보다, 생각하곤 해요. 의도적으로 그런 곡을 쓰려면 잘 안되긴 하지만요.”

지난해 11월부터는 1990년대 고 김광석이 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밤의 창가에서’의 DJ로도 활동하고 있다. 뮤지션인 만큼 ‘음악’으로 시작했던 방송은 최근 직업 상담 등의 코너를 신설하며 ‘청춘’에 관한 테마로도 확장 중이다. 부모, 노부부 등이 보내주는 사연을 읽으며 ‘인생’ 자체를 배우기도 한다.
 
“다양한 나이대의 청취자분들이 저마다의 고민들을 이야기 해주세요. 제가 통과해 온 시절을 공유할 때면 반갑기도 하고 경험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선 배우기도 하고요. 제 음악이 청춘, 방황, 커피 등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라디오는 더 넓은 세상을 배우는 느낌이에요. 아이디어 노트에 매 순간 기록해 놓고 있어요. 앞으로 신곡에는 그런 새로운 이야기들도 담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는 6월21일에는 마틴 스미스와의 합동 공연 ‘블랜딩’도 예정돼 있다. ‘서로 다른 원두를 섞는 듯한 느낌’으로 진행되는 콘셉트에서 여전한 커피 사랑이 읽혔다. 그는 후배 가수들과의 콜라보가 어떨 것 같냐는 물음에 “’선배’, ’후배’라는 말 표현을 평소 좋아하진 않는다”며 “음악을 하는 같은 뮤지션으로서 서로의 필드를 느끼고 다른 에너지를 공유할 것 같아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여행지에 빗대 달라고 하니, 꽤 오랜 고민 끝에 답을 했다. “하와이 같은 음악이었으면 좋겠네요. 혹시 하와이 가보셨어요?”
 
못 가봤다고 하자 친절한 설명이 돌아온다. “하와이에는 교통체증이 빼곡한 도시도 있고 밀림도 있고 화산도 있고 그래요. 제가 좋아하는 잭 존슨도 서핑을 하며 살고 있고요. 너무나도 다채로운 것들이 담겨 있죠. 저 역시 좀 변덕스러운 편이거든요. 어떤 땐 악마처럼, 어떤 땐 천사처럼 느껴지는 다양한 표현들을 음악으로 해보고 싶어요.”
 
“아 물론! 라디오는 다릅니다! 그 곳에선 변덕스럽지 않을 거에요. 무조건 청취자 여러 분들이 편히 쉬다가시는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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