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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국정원 특활비' 뇌물 아니다"

"목적 외 사용으로 위법하나 대가성 없어…국고손실만 유죄"

2018-06-1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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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법원이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에서 청와대로 상납한 특수활동비는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목적 외 사용으로 위법한 행위지만 직무관련 대가성이 없다고 본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성창호)는 15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공여·국고 등 손실) 등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게 국고손실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들에게도 동일한 취지로 판단하고 각각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병호 전 원장에겐 2년간 자격정지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특활비는 국내·외 보안정보 수집 등에 쓰도록 그 용도나 목적이 정해져 있는데 그런 돈을 대통령에게 매달 지급한 것은 사업 목적 범위를 벗어나 위법하다"면서도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특수관계를 고려하면 편의 명목이었다고 한 것은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현실적인 동기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남 전 원장 등의 특활비 상납 관련 혐의 중 특가법상 국고손실 혐의는 인정했지만 뇌물공여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이어 "자발적으로 특활비를 전달할 게 아니라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는 입장에서 소극적으로 지시에 응했고, 대통령의 직무 관련 대가로 지급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면서 "이번 사건은 대통령이 피고인들과 공모해 국고를 손실하고 횡령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직 국정원장 3명은 재임 시절인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매달 5000만원에서 1억원 상당의 특활비를 박 전 대통령 측에 상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 금액은 총 36억 5000만원이다.
 
이날 판결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대통령의 특활비 사건 재판을 국정원장의 3명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가 맡고있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재판부의 판단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검찰은 "뇌물공여자가 개인돈을 전달하면 뇌물이 되고, 나랏돈 횡령해 전달하면 뇌물이 아니라는 비합리적 논리"라며 "이 사건의 직무관련성은 판례상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 "뇌물죄는 공무에 대한 사회일반의 신뢰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국정원장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상납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대통령 직무에 대한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왼쪽부터),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 사진/뉴시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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