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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

(언론고시생)반

2018-06-19 07:20

조회수 : 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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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돌아보면 안 된다.
에우리디케를 찾아 명계까지 온 오르페우스에게 하데스가 걸었던 유일한 조건이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가 정말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지 믿지 못했다. 그가 뒤를 돌아본 순간, 사랑하는 아내는 다시 저승으로 끌려갔다.
 
“뒤 돌아보면 죽는다!!”
지상으로 올라 온 하데스의 표현은 좀 더 과격했다. 터부를 어기고 나면 배드민턴 감독님은 나를 저승으로 끌고 가는 대신 다른 형벌을 내렸다. 그렇게 하루 네 시간씩. 13.4m와 6.1m의 가로세로 공간을 종일 토해가며 뛰어야 했다. 물이 마시고 싶을 땐 화장실에 가서 몰래 마셨다.
“뒤 돌아 보지 마!!”
감독님은 진정 하데스의 현신이 틀림없다.
 
뛰는 것 보다 토하는 걸 참는 게 익숙해 졌을 때 쯤, 포메이션 수업이 시작 된다. 혼자 뛰어다녀야 했던 코트를 세로로 갈라본다. 가로로 갈라본다. 이젠 절반만 뛰어다니면 될 것 같은데, 그게 또 아니다. 더 빠르게, 더 부지런하게 뛰어야 한다. 내가 아닌 파트너를 위해. 결국 다시 토하고 만다.
 
배드민턴 복식조에겐 크게 두 가지 포메이션이 있다. 양쪽으로 나눈 경우와 상하로 나누어 나눈 경우. 상하로 나눈 경우. 후방의 선수는 파트너가 자신의 공격을 마무리 해줄 것이라 믿고 혼신의 공격을 날리고 전방의 선수는 파트너의 공격이 반드시 상대 코트에 들어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이 공을 띄운 순간 ‘내 파트너가 칠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면 자칫 파트너의의 공격에 눈을 맞아 실명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절대 뒤 돌아 보면 안 된다.
 
양쪽으로 나눈 경우는 수비다. 상대에게 클리어나 언더로 공을 띄워 보낸 경우에 해당한다. 코트를 반과 반으로 갈랐으니 각자 자신의 구역만 잘 막으면 된다. 하지만 예외인 곳이 있다. 공격의 정석인 반과 반 사이, 즉 한가운데다. 파트너와 사이를 가르는 공격은 ‘옆에 사람이 받겠지’하는 마음을 뚫고 허무하게 코트에 떨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서로 받으려던 선수들의 라켓이 부딪쳐 부러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 곳은 실력으로 받는 곳이 아니다. 약속이다. 그리고 믿음이다. 가운데는 포핸드로 받을 수 있는 왼쪽에 있는 선수가 받아야 한다. 상대방의 표정이 아무리 무서워도, 팀이 쫓겨 매치 포인트라고 해도 오른쪽 선수는 왼쪽 선수를 믿는다. 그렇게 반과 반은 믿음과 약속이라는 접착제로 바르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다.
 
절반과 절반으로 나뉜 코트가 온전하게 하나가 되기 위해선 저렇듯 약속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다른 반과 반도 같다. 부모와 자식, 선생과 제자, 비약하자면 국민과 정부도 역시 그렇다. 각자가 각자의 일을 잘하는 것은 파트너를 위한 기본기일 뿐이다. 파트너를 위해 코트 구석구석 부지런히 움직이겠다는 약속, 파트너 역시 나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제 몫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반과 반 사이에 작용할 때 복식조는 어느 곳에서나 커다란 하나가 되어 최고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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