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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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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진실이 이끄는대로…"반갑습니다. 최기철입니다."
(시론)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의 적(敵)

2018-06-26 06:00

조회수 : 7,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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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다. 정보의 홍수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쉴 새 없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인터넷이 없다면 의미나 쓸모가 대폭 줄어든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목디스크가 일상화되고 대화가 없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가다 사고를 당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근거 없는 말이나 가짜뉴스가 무시로 신속하게 소통되고, 결국 확증편향에 기대 오류가 일반화되는 일이 잦다.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글이 올라와도 가짜 글이나 뉴스의 양이나 확산속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일 뿐이다. 이건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을 수 있다’는 괴담보다 더욱 황당하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개 짚어본다. 우선 아베 노부유키다. 일본 패망 당시 마지막 총독으로 있었던 자다. 그가 조선을 떠날 때 남겼다는, 예언이라고도 하고 저주라고도 하는 말이 인터넷에 떠돈지 벌써 오래되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아베 노부유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단지 이상각이 지은 [1910년, 그들이 왔다](효형출판, 2010)라는 책 223쪽 각주 부분에, 아베 노부유키의 발언이라고 하면서 그것도 “보라! 실로...” 이후의 두 번째 문단에 해당하는 일부 내용이 들어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출처 불명으로, 아베가 유언으로 남겼다고도 하고 그가 일기에 적은 말이었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 됐든 결국 실체가 없는 허망한 소리다. 일본 총독이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운운한다는 게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또 있다. 이번엔 플라톤이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벌은 자신보다 더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는 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질타하거나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말로 거의 일반화될 정도다.
 
그런데 ‘철인(哲人)통치’를 주장한 플라톤의 사상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좀 많이 이상하다. 플라톤이 최후 저작인 <법률>에서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국가>에서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옹호하긴 했지만, 실제 위 인용구는 <국가> 347c에서 발견된다. 영문 서적에는 “(...) the chief penalty is to be governed by someone worse if a man will not himself hold office and rule”이라 번역되었다. 즉 “가장 큰 형벌은, 만약 그가 스스로 자리(관직)를 맡고 통치하지 않으려 하면 자신보다 더 못한 누군가에 의해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사상과 그 사상이 담긴 대표 저작인 <국가>의 전후 맥락을 보자면, 여기서 관직에 나서길 거부하는 "그"는 ‘훌륭한 사람’ 즉, ‘철학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를 가리키는 것이지, 유권자나 일반 시민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없다. 앞서 본 아베 노부유키의 말처럼 근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앞뒤 맥락을 살피지 않고 그냥 편리한대로 인용, 해석한 탓이라 할까.
 
또 있다. 단테의 신곡에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고 적었다는데, 실제 이 말을 한 사람은 케네디(John F. Kennedy)다. 서독을 방문한 케네디가 단테의 말이라며 인용했다는 건데, 정작 단테의 어느 저술에도 그 말은 없다.
 
프랑수아 기조가 “스무살에 공화파가 아닌 자는 심장이 없다는 증거이고, 서른살에도 공화파인 사람은 머리가 없다는 증거다”라고 한 말은 완전히 방향을 바꿔 “이십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사십대에도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란 말로 바뀌었으니 기조가 알았다면 기가 막힐 일이다.
 
이처럼 시민들이 깨어있어야 할 이유는 여전히 많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을 경계하고 바로잡아야 디지털시대 민주주의가 오염되거나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곡학아세를 일삼은 학자와 언론인을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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