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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정

게을러 이제 써보는 지방선거 취재일기

2018-07-06 01:38

조회수 :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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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영이야?”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본 동료가 그런다. 그 가수의 외모를 닮은 게 아니어서 아쉽다. ‘홍길동 후예’라 불리는 그녀의 전국구 일정을 흉내 내냐는 말이다. 처음엔 경남 진주 한 전통시장서 먹은 비빔밥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이튿날엔 울산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무탈하게 공항에 도착한 사진도 또 한 장. 하루는 태백 황지동, 다음날엔 대구 팔달구로 갔다. 지난달 보름여의 일정 중 한토막이다.
 
6·13지방선거였다. 17곳 광역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수도 없이 많은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격전지가 아닌 곳이 없다 하니 궁금했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후보를 쫓으며 민심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현장 24시라고 썼지만 당일 취재 당일 마감이다. 최대한 일찍부터 후보 일정을 다 쫓고 5시 전에 기사를 완성해야 했다. 국회 출입하는 후배 둘과 함께 매일 2인1조로 신문 한 면을 채워야 한다. 좋다. 일단 서울 탈출이다.
 
기자의 업을 지녀서 운 좋게 출장 기회를 자주 가졌다. 내 위치에서 가장 알맞은 형태의 배낭여행을 떠나는 호사도 여러 번 누렸다. 그러던 것이 작년 말 정치부 발령 후로는 뚝 끊겼고, 선거 덕에 오랜만에 외출을 얻었다. 내속의 자유가 일렁이기까지 했다. 기사 마감 뒤 잠깐의 시간이라도 자고 싶으면 자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된다. 계획은 없지만 뭐든 재밌을 것만 같았다.
 
짐을 싸고 다음 현장으로 가는 날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일찍 잠이 깼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전날 발권해둔 표도 다시 살핀다. 아귀 맞춰 현금도 단속하고 카드를 챙겼는지 본다. 두고 나온 것은 없는지, 수첩이랑 볼펜이 가방에 들었는지 또 확인하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매일 다르다. 13일 인천을 시작으로 대전 둔산동, 경남 진주, 청주 상당공원, 울산 동구, 강원 원주·태백, 대구 팔달, 포항 종합운동장, 세종 중앙타운, 경기 여주·양평, 제주 서귀포까지 꼭 11곳을 방문했다. 집에서 서울역, 때론 김포공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목적지까지 가고 택시타고 후보가 있는 곳까지 짧게는 1시간 반, 많게는 4시간 반까지도 걸렸다. 처음 닿는 도시들이 많았고 그래서 그런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오전 후보의 첫 일정을 따라잡지 못하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처음이 힘든 법이다. 앞선 몇 차례의 현장 취재 덕에 낯선 현장취재에 따르는 걱정과 긴장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생각했다. 거듭하면 둔한 몸도 적응할 줄 알았는데. 둔한 몸은 그냥 둔한 몸.
 
어느덧 제주 마지막 일정에선 신발 밑창이 떨어졌다. 작년에 사 몇 번 안신은 신발인데 싸구려 신발이라 허술했나 보다.
 
 
그리고 돌아온 일상이다. KTX 예매 기록이 14번(2번은 놓쳐 취소. 비싼 수수료를 떼였다), 고속버스 6번 타고, 비행기 표 발권은 4번 했다. 그렇게 만든 수첩은 꼭 7권이다. 물기가 말라 꼬질꼬질. 내 글씨지만 해석이 어렵다. 보름여 동안 친구도 안 만나고 생애 처음 맛보는 체험을 하며 매일 관계의 상처를 겁냈다. 매일 아침 곤히 자는 아이들을 보며 나왔다. 설거지통에 접시 쌓이고 빨래 수북해도 모르쇠하고 나온 게 한 두번이 아녔다. 현장취재 첫 일정으로 인천 갈 때 잡힌 입술 물집은 곧 주변으로 번졌다. 둘째 돌잔치 때 잡히고 4년 만이다. 영광의 상처인가. 친정 엄마 만나면 뭐라고 말할지 생각해본다. 별걸 다 생각해본다.
 
그건 참 이상한 일이다. 왜 그저께 쓴 기사가 무엇인지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그에 비해 지난 5월 11곳의 지방출장 일정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또렷이 떠오른다. 그냥 소금 생각하면 짠맛이 입 안 가득 번지고 설탕 떠올리면 단맛 가득 번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 기억이 소금인지 설탕인진 모르겠다. 그렇대도 머릿속에 오래오래 에너지가 돼 남았으면 하는 바람만은 확실하다. 
 
 
제주 전통시장 과일가게 사장님이 주신 카라향. 
 
 
안녕, 테디베어. 제주이모가 준 지원이 지호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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