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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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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토마토칼럼)‘인랑’을 만신창이로 만든 ‘익명의 폭력성’

2018-08-02 06:00

조회수 : 10,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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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으면 아프다. 맞는 사람은 맞을 만한 이유가 있다. 그래서 때려야 한다. 때려야 하니 때렸을 뿐이고, 맞아서 아픈 건 맞는 이유에 대한 결과일 뿐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익명’이란 이름 뒤에 숨은 일부 네티즌들의 잣대가 혹시 이런 것일까? 최근 개봉한 영화 ‘인랑’이 익명의 폭력에 만신창이가 됐다. 영화 자체와 관련 없는 배우 가족사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창작물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관람 후 평가’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 싫다. 그래서 영화도 싫다”는 막무가내 논리다. 익명이란 서슬 퍼런 칼날은 도마 위 ‘인랑’을 난도질 하고 있다. 200억 제작비의 영화가 공중분해 위기에 직면했다.
 
이 영화를 둘러싼 최근 분위기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 획일화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익명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진실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감독과 배우, 스태프 등 수백 명이 노력한 결과물이 분노한 군중심리를 타고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박탈 당했다. 물론 거대 자본이 투입됐단 이유로 무작정 영화가 보호 받을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사회적 트렌드가 돼버린 ‘맹목적 비난과 극혐’이 유독 이 영화에만 집중되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가 괴벽스럽다.
 
영화는 영화만의 ‘문법’이 있다. 어떤 영화이든 그 영화 속 문법 세계는 감독이 창조한 세계다. 감독은 영화 속 메시지를 한국적 색채에 맞게 변화시키고 변주한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되면 영화에 대한 판단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칼자루를 쥔 건 관객이다. 좋다 혹은 나쁘다. 아니면 그저 그렇다. 영화를 샅샅이 해부하고 냉철한 평가를 내리면 된다. 그것이 관객의 권한이다. 그럼에도 ‘인랑’은 항변도 못하고 수모를 당하고 있는 중이다. 때리는 자들에게 진실은 무의미하다.
 
돌이켜보면 ‘인랑’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익명성이 군중심리를 타고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갖고 오는지 경험했다. 수년 전 배우 최진실을 자살로 내몰았던 것도 결국은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익명들의 무조건적인 비난이었다.
 
인류 역사상 대중 선동의 천재이자 제일로 불린 나치의 선동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분노와 증오’(무형의 폭력)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렇다. 보이지 않는 익명의 폭력성은 실체의 폭력보다 더욱 강력한 악의로 어어 진다. 그것이 문제다.
 
김재범 뉴스카페 팀장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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